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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변영희 시인 / 대범하게 위선적으로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

대범하게 위선적으로

변영희 시인

 

 

        하얀 볼을 놓으면

        골프채가 원을 그리듯 지나가지

        눈도 깜박 안하고 공을 그러쥐며

        날아가는 공 따위 바라보지도 않고

         

        가끔 나누는 인사처럼

        나이스 샷

         

        올까말까 망설이는 비

        올라갈까말까 망설이는  눈

        토끼는 사라지고 달에 고양이가 산다는

        미정이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고

         

        연습 볼을 놓는 기계가 나올 거야

        달 토끼가 사라지고 고양이가 나타나는 것처럼

         

        골퍼의 힘 조절에 따라 멀리 날아가거나

        가까이 쌓이는 공들

        흰 눈처럼 쌓이는데 녹지 않아

         

        새벽에만 오는 사람이 좋더라

        짧은 시간 휘두르고 땀 흘리고 가는 사람

        신문을 오래 보는 사람은 말이 많아

        달의 눈물 같은 건 관심도 없지

         

        삼십년 후 태어난 시를 읽다

        오래된 새벽이 떠올랐어

        대범하게, 위선적으로

        게다가 참되게 흘러온 오늘

        흰 공처럼 쌓인 새벽을 만난거야

         

        캬라멜 마키아토 한 잔 마시자

        스크린골프장 옆 스트릿84로 와

         

        마술처럼 공 놓는 기계가 나왔고

        눈의 착란을 일으키는 스크린까지 나왔는데

        넌 어디 있니 달 토끼와 고양이를

        어루만지던 미정아, 너는

         

        마키아토는 과연 달콤하니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변영희 시인

전남 장성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수학. 방송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졸업. 2010년《시에》로 등단. 시집으로『y의 진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