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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보경 시인 / 간절의 틈새에 손가락이 끼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1.

간절의 틈새에 손가락이 끼다

한보경 시인

 

 

          이미 와 있는

          이미의 이마를 보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아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간절과 간절의 벌어진 틈새에 손가락이 끼었다

           

          열손가락을 기어이 뭉개고 마는 일

           

          아직 피지 않았거나 이미 지고만 꽃들처럼

          세상의 모든 약속들이 핏빛임을 알아버리는 일

           

          가늠할 수 없이 까마득한 허공에

          간절의 남루한 집을 지었다 헐고 다시 또 짓는

           

          그 밖의 일들처럼,

          단지 열 손가락의 일은 아닌 일

           

          비루하고 지루한 번제처럼, 나날이

           

          이미 가버린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사이에서 핏빛 꽃이 핀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한보경 시인

2009년 《불교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여기가 거기였을 때』와 『덤, 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