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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순 시인 / 귀를 씻었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1.

강순 시인 / 귀를 씻었다

 

 

        귀를 주웠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운동화 같은

         

        귀를 주웠다.

        누군가가 쓰다 버린 지우개 같은

         

        귀를 모았다.

        귀들이 섞여 내 귀가 없어졌다.

         

        귀를 만졌다.

        기억은 활짝 꽃피지 못한 암갈색

        귀 속에서 슬픈 짐승 소리가 났다.

         

        귀 속의 귀

        귀 밖의 귀

        다 버리고,

         

        어느 새벽

        서랍에서 빛바랜 낡은 두 귀를 꺼내

        천천히 씻었다.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나의 이름은 막 피어나는 분홍색이었다.

 

계간 『문예연구』 2018년 겨울호 발표

 


 

강순 시인

제주에서 출생. 1998년 《현대문학》에 〈사춘기〉 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