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 시인 / 귀를 씻었다
귀를 주웠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운동화 같은
귀를 주웠다. 누군가가 쓰다 버린 지우개 같은
귀를 모았다. 귀들이 섞여 내 귀가 없어졌다.
귀를 만졌다. 기억은 활짝 꽃피지 못한 암갈색 귀 속에서 슬픈 짐승 소리가 났다.
귀 속의 귀 귀 밖의 귀 다 버리고,
어느 새벽 서랍에서 빛바랜 낡은 두 귀를 꺼내 천천히 씻었다.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나의 이름은 막 피어나는 분홍색이었다.
계간 『문예연구』 201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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