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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왕노 시인 / 사랑학 개론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21.

김왕노 시인 / 사랑학 개론

 

 

쿠페아, 어디 있는가. 묻지 마 살인과 자살테러의 시간이라도

그리움은 숙명과 같은 것이라 적에게 노출되더라도

쿠페아, 너를 부르다가 무자비하게 죽어도 그것이 그리움의 길이다.

 

그리움은 부동의 재산이라고, 그리움이 화폐로 금으로 은으로

축적도 하지만 결국은 그리움을 탕진하며 한 사람에게 가야만 하는 섭리를

쿠페아, 어디 있는가. 우리가 가장 결핍된 부분이 사랑과 그리움

우리 문명의 치명적 오류는 사랑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도외시한 것

 

사사삼경 논어 맹자 가례보다 더 우선 배워야 할 것이 사랑 학 개론이었다.

쿠페아, 아직 사랑이라면 너무 구태의연하고 맹목적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것이 모든 것의 화근이고 이 편견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종말이 온다.

 

테러와 약육강식 배반과 숙청 피와 장미의 가시가 뒤엉킨 역사는

사랑의 부재가 가져온 사랑의 오해가 가져온 산물이 아닌가.

사랑에 방심한 사람은 사랑을 잃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잃는다.

 

세상이 점점 더 사막화되어가는 인류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는 순간

대책이란 그리 크나큰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사랑에 눈 뜨고 최후의 순간까지 사랑을 비처럼 뿌리는 것이다.

 

가뭄으로 시들어 가는 텃밭에 물을 주듯 모종을 옮기고 물을 주듯

가슴에 사랑의 물뿌리개 한 개 쯤은 있어 끝없이 뿌리는 것이다.

 

쿠페아, 사랑 없는 밤이 무섭다. 사랑 없이 노는 아이가 섬짓하다.

사랑이 없으므로 살의를 만지작거리면서 노는 밤인 줄 모른다.

 

사랑이 없어 어떤 사랑의 말을 나눌지 몰라 방황하고 자해하는지 모른다.

쿠페아, 우리가 후세에 줄 선물로 사랑만큼 고귀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인류가 존속하느냐 멸하느냐의 핵심은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곧 닥칠지 모르는 빙하기가 아니라 사랑의 존폐에 달린 것이다.

 

쿠페아, 가막살나무의 꽃말,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라를 생각하다가

창포의 꽃말 인 경의, 신비한 사람, 할 말이 있어요. 를 생각하다가

사랑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랑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살아가는 데는 한 개의 목숨이 필요하나 사랑하는 데는

천 개의 목숨이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쿠페아, 사랑을 말하는 데 갑자기 비바람이 분다.

멀지 않아 네 사랑이 내 생의 등줄기를 거침없이 훑고 지나가길 바란다.

 

계간 『예술가』 2016년 여름호 발표

 


 

김왕노 시인

경북 포항에서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 『그리운 파란만장』,『사진속의 바다』,『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게릴라』 등이 있음. 2003 년 제 8 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 년 제 7 회 박인환 문학상, 2008 년 제 3 회 지리산 문학상, 2016년 제 2회 디카시 작품상 2016년 수원문학대상 등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5 회 수혜. 현재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현재 계간 『시와 경계』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