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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남희 시인 / 처마 끝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2.

박남희 시인 / 처마 끝

 

 

        사랑의 말은 지상에 있고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지상이 뜨겁게 밀어올린 말이 구름이 될 때

        구름은 식어져서 비를 내린다

         

        그대여

        이별을 생각할 때 처마 끝을 보라

        마른 처마 끝으로 물이 고이고

        이내 글썽해질 때

        물이 아득하게 지나온 공중을 보라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공중은 어디도 길이고

        어느 곳도 절벽이다

        공중은 글썽해질 때 뛰어내린다

         

        무언가 다 말을 하지 못한 공중은

        지상에 닿지 않고 처마 끝에 매달린다

        그리곤 한 방울씩 아프게

        수직의 말을 한다

         

        수직의 말은 글썽이며 처마 끝에 있고

         

        그 아래

         

        지느러미를 단

        수평의 말이 멀리 허방을 보고있다

         

        구릿빛 지느러미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계간 『문학과 사람』 2018년 창간(여름)호 발표

 


 

박남희 시인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한국문연, 1999),『이불 속의 쥐』(문학과경계, 2005) 등과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