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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명윤 시인 / 문병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4.

이명윤 시인 / 문병

 

 

      엑스레이에 구름 낀 하늘이 찍힙니다,

       

      어제 아팠던 내가

      오늘 아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서로의 병명을 묻느라 이번 생은 다 소비하고 말 것 같습니다

       

      병동을 들어서면 늘 벌거벗은 기분이 들지요

      내 몸 구석구석 스캔하는 환한 불빛들, 가끔씩 숨을 멎고

      눈을 깜박거려야 넘어가는 화면들

      복도엔 오늘도 역시 알 수 없는 냄새들이 흐르고요 마스크로 가렸지만

      눈빛을 숨길 수 없는, 질문들

       

      신이 우리를 통제하는 지루하고 오래된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웃음은 어느 공사장 난간에서 골절되었다는군요

      고요한 병동은 시간이 고여 있는 노란 연못 같습니다

       

      당신은 누워 링거만 보고

      우리는 서서 당신을 봅니다

       

      아프지 말고* 살아가는 일, 이 세상에 없는 문장을 위하여

      어제 아팠던 내가 오늘 아픈 당신을 위로하러 왔습니다

      이것은 계절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연대

       

      병실 문을 나설 때까지

      그늘진 침대에서 돌아누워 있는 등을 봅니다

      바위처럼 아픈 것입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숲 속에 혼자 있는 것입니다

       

      *자이언티(Zion.T)의 노래‘양화대교’에 나오는 그 '아프지 말고’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이명윤 시인

1968년 통영에서 출생. 2007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수화기 속의 여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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