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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주희 시인 / 베르주 화요일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26.

고주희 시인 / 베르주 화요일

 

 

일곱 번의 계절이 포도 한 알을 깨운다.

 

먹구름의 방향을 보며 화요일인지 목요일인지

신맛과 장마를 끊임없이 감별하며

입안에 머금은 몇 초, 아직 열리지 않았다 감각은

 

오래전 풍습으로 항아리에 묻어둔 계절이

성급한 과즙으로 부풀어 오를 때

내 어두운 귓속을 파고드는 아직 오지 않은 맛

시간은 이제 평등해, 말하고 싶지만

 

달과 별을 기준으로

내 오른쪽은 좀 더 새콤하게 미쳤고

쉽게 물러지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저주한다.

화요일, 베르주 화요일.

 

보랏빛 낯을 씻어도 그 속엔 내가 없다.

질문이 짙어질수록 윤곽이 사라지는 질문

 

십 년, 이십 년을 내다보는 어둠은

코르크 냄새를 지우며 서서히 팽창할거야.

 

첫 수확이 끝나고 파티를 한다.

눈빛이 이미 틀어져 버린 사람들이

 

*베르주 Verjus, 익지 않은 포도

 

웹진 『시인광장』 2018년 9월호 발표

 

 


 

고주희 시인

2015년 《시와 표현》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