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 시인 / 그림의 그림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그림자는 정직하다.
다리 안쪽의 남자가 난간을 반쯤 넘어간 그림자를 붙잡고 있다. 그림자가 다리 밖으로 반쯤의 힘을 버렸는데도 난간 안쪽의 남자는 왜 저리 버둥거릴까. 반쯤 경계에서 혼신의 힘으로 평상복과 수의의 그림자를 짓고 있는 두 세상의 욕망. 위태롭게, 다리 밖의 그림자는 다리 안쪽의 남자를 마치 몇 번의 생을 따라온 전생처럼 돌아보고 다리 안쪽의 남자는 이번 생애까지 쫓아 온 자신의 몇 번이나 헛디뎠던 전생인 양 다리 바깥의 그림자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다.
그림자를 잡아다가 작으면 늘이고 크면 자르는 프로쿠르스테스의 정답, 다리가 길거나 짧거나 침대의 선택은 오늘이 내민 패의 전부일 뿐인데 그림자를 자를수록 예의들 가지런해진다.
천칭 저울 위에서 기우뚱거리는 난간의 균형과 불균형은 어떤 하루의 슬픈 자화상일까.
오늘의 그림자는 귀가 너무 얇고 내 그림자는 예의를 모르고 한 쌍의 나비, 난간 모서리에서 아슬아슬 짝짓기를 하고 있다.
저것은 그림의 그림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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