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네비 사무엘 김명숙 소피아 박사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무엘의 고향 “라마”(1사무 2,11)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에프라임 출신 엘카나의 아들로서, 불임이던 한나의 오랜 기도 끝에 태어났습니다. 너무 간절하여 술에 취한 듯 보인 한나의 기도 장면(1,10-16)에서 당시 아이가 여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떻게 운명을 좌우했는지 엿볼 수 있지요. 한나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를 바치겠다고 서원합니다(11절). 그리고 기다리던 아이를 얻자 엘리 사제가 있던 실로로 보내지요(24-28절). 실로는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 주님의 성소가 자리했던 곳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그때부터 하느님을 섬기게 되지요.
성경을 잘 모르는 초보 신자도 사무엘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그는 이스라엘 왕정이 시작되던 무렵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인물입니다. 모세, 미르얌(탈출 15,20), 드보라(판관 4,4) 이후에 활동한 예언자이자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이고요(1사무 7,6) 사제 역할도 했습니다(7,9-10). 그의 명성은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3,20) 온 이스라엘에 퍼져 있었지요.
사무엘은 판관제에서 왕정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크게 활약합니다. 이런 체제의 전환은 주변 국가들, 특히 필리스티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함이었습니다(9,16). 물론 타민족처럼 임금을 달라는 백성의 요구가 하느님께 불충한 모습으로 비춰졌고, 사무엘에게는 이미 판관으로 활동한 두 아들도 있었습니다(8,1-8). 하지만 아버지만 한 아들이 없다는 속담처럼 그 둘은 부정부패에만 몰두했고요, 사무엘은 나이가 들어 백성을 이끌 수 없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판관을 세우는 체제를 유지하느냐, 핏줄로 계승자가 정해지는 안정적인 왕정을 택하느냐는 지금 생각해도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단기적으로는 임금을 중심으로 합심하는 체제가 효과적이겠지만, 사무엘의 경고(8,11-18)처럼 왕정에 따른 폐해가 나라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설을 껴안고 사무엘은 사울을 첫 임금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어렵사리 임금이 된 그가 하느님 눈 밖에 나자 그 불운에 슬퍼하지요(16,1). 그러고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첫 두 임금이 사무엘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그의 여생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라마에서 죽었다는 점만 확인됩니다(25,1). 라마에 자리한 ‘네비 사무엘’이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지요.
사무엘기에는 사무엘이 품었을 생각이나 번민이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격변의 시기에 그가 겪었을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위대함은, 때가 되었을 때 차세대에 양보할 줄 알았던 미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고 자리에 있다가도 다음 세대를 위해 물러날 줄 아는 결단, 내 아들이 아니더라도 민족을 위해 더 합당한 이를 지도자로 세우는 도량,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줄 알았던 지혜가 눈부십니다. 권력을 새파란 젊은이에게 양보하고도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무엘은, 판관제에서 왕정제로 넘어가던 시기에 하느님의 백성을 받쳐준 든든한 기둥이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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