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바다의 기적 (탈출 14,15-15,21)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지금 우리는 바알 츠폰을 마주한 바닷가에 서 있습니다. 뒤로는 파라오의 병거가 바짝 추격해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앞장서 인도하던 구름 기둥이 뒤로 돌아가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서서 이집트 군대의 시야는 흐리게 하고, 대신 이스라엘 진영은 환히 밝혀 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서 바다가 갈라져서 마른 땅이 드러납니다. 성경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경 저자는 이 기적 사건을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는 이 사건을 하느님의 개입으로 일어난 전적인 기적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곧 모세가 손을 뻗자 바다는 둘로 갈라져서 물이 좌우에서 벽을 이루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너 바다를 건넜습니다. 또 하나는 때마침 일어난 자연 현상으로 이 사건을 묘사합니다. 밤새도록 동풍이 불자 바닷물이 한쪽으로 밀려 마른 땅이 드러났고, 날이 새어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물은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목격됩니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하여 진도와 모도 사이에 거대한 바닷길이 열릴 때가 있습니다. 탈출기에 묘사된 이런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후보지는 나일강 델타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인 만잘라 호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이 호수를 지나갔을 가능성이 있고, 또 만잘라 호수는 사주나 사취의 발달로 바다와 격리된 석호(潟湖)여서 그 깊이가 비교적 얕으므로 거센 바람이 한 방향으로 지속해서 불면 호수 바닥이 드러날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저자가 이 기적 사건을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한 것은 이 사건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개입으로 일어난 구원 사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뒤따라 이집트의 군사들은 병거를 몰고 바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병거 바퀴가 바닥의 진흙에 박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기에 얼마 나아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온 물살에 휘말려 모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행사하신 큰 권능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들의 벅찬 마음은 노래로 터져 나옵니다. 탈출기 15장은 하느님의 기적적인 구원을 체험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부른 찬미의 노래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선창하면, 미리암과 여인들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며 응답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지금도 매일 아침 기도 때 이 노래를 낭송합니다.
바다의 기적 사건은 탈출기뿐만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언급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조상들이 과거에 경험하였던 구원 사건을 왜 거듭하여 기억하고 노래하였을까요?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대한 기억은 시련 가운데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기억 장치들을 마련하였습니다. 과월절에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것도, 기도할 때마다 팔과 이마에 성구갑을 차는 것도, 옷자락에 옷술을 다는 것도 모두 하느님께서 그들의 주님이시며, 그들을 지켜주시고 돌보고 계심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 장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억 장치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해 주신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기억하는 이들은 어제 나를 돌보셨던 그 하느님께서 오늘도 돌보실 것이며, 내일도 또한 그러하실 것임을 굳게 신뢰합니다.
다음 순례지는 시나이 광야가 될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광야 여정의 준비물은 여러분의 자유에 맡겨 드리겠습니다.
[2021년 12월 12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가톨릭마산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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