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여인들] 아비가일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사울은 다윗과 평생 원수로 지냈다. 다윗이 필리스티아인에게서 거둔 승리에 사울은 두려움을 느꼈고, 다윗을 없애려 한다(1사무 18,28-29). 그런 사울을 다윗은 해치려 하지 않는다(1사무 24,13).
다윗이 사울로부터 쫓기는 어느 봄날, 양털을 깎는 봄의 축제가 다가왔다. 다윗은 자신의 수하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부자 나발(‘지능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한다. 떠돌이 다윗이언정 나름의 부하가 있었고, 그 부하들은 나발의 양떼와 목자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에 다윗은 무장하고 나발을 치러 나간다. 선을 행한 다윗에게 나발은 악으로 응답했던 것이다(1사무 25,21).
아비가일(‘나의 아버지는 기쁨’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의 등장은 여기서부터다. 아비가일은 훌륭한 여인이었다. 지적으로 뛰어난 여인이었고 용모도 아름다웠다(1사무 25,3). 난폭하고 성미가 고약한 남편, 나발을 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일행이 축제를 즐길 먹거리를 충분히 준비한 후에 다윗을 향해 떠나간다. 물론 남편 나발에게 알리지 않은 채 말이다. 성경은 나발의 성미가 고약하다고 했고, 고약한 성미로는 다윗의 진격에 몰살당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나리, 죄는 바로 저에게 있습니다.” 어찌 그런가. 죄는 나발에게 있었는데 말이다. 아비가일은 남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자 한 게 아니다. “이제 주님께서 나리께 약속하신 복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어 나리를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울실 터인데, 지금 정당한 이유 없이 피를 흘리며 몸소 복수하시다가, 나리께서 후회하시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1사무 25,30-31).” 아비가일은 자신이 아니라 다윗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후회하는 일 없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 다윗은 아비가일의 분별력을 칭송하는 동시에 그런 아비가일을 만나 제 분노를 하느님을 향한 찬미로 바꾸어 놓는다(1사무 25,32-33). 이후 다윗의 청을 거절한 나발은 심장이 멎으며 죽는다. 그리고 과부가 된 아비가일을 다윗은 아내로 맞아들인다(1사무 25,39-42).
아비가일은 남편의 고약한 일 안에서 자신의 신념과 신앙을 고백한 슬기로운 여인이다. 타인의 죄를 탓하고 무찌르고 그것을 정의라 우기는 데 익숙한 우리는 아비가일을 통해 진정한 분별력을 배우게 된다. 타인의 죄는 죄다. 그 죄를 단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죄를 죄로 남길 뿐이다. 아비가일은 죄를 축복으로 바꾸어놓고야 만다. 슬기로운 분별력은 죄를 향한 냉철한 시선이 아니라 축복을 향한 회개에로의 초대다. 어지러운 세상의 난폭한 일들 안에 아비가일은 그 이름대로 ‘기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으로 제 신앙을 지켜 나간 여인이었다.
[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대구주보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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