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성모 방문 기념 성당 김명숙 소피아
예루살렘의 남서쪽 외곽에는 에인 케렘(포도원의 샘)이라 하는 마을이 자리해 있습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보셨다는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루카 1,39)로서 즈카르야 사제와 엘리사벳이 살았던 여름 별장이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기에 ‘성모 방문 기념 성당’이 세워져 있는데요,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엘리사벳이 다섯 달 숨어 지낸 곳으로 전해지지요(1,24). 교부 암브로시오와 토리노의 막시모는, 엘리사벳이 당황한 나머지 산골로 몸을 숨긴 거라고 보았는데요, 어쩌면 천사가 전해준 수태고지를 즈카르야가 믿지 않아 입이 함구되었기에(1,5-22) 아내인 엘리사벳도 하느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조심하며 은둔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마리아는 나자렛 집에서 자신의 수태고지를 들을 때 엘리사벳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1,36-37). 그 길로 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유다 지방으로 떠나지요. 당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두려움보다 하느님이 자신을 도구로 쓰신다는 데 기쁨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기적을 경험하고 있는 엘리사벳과 기쁨을 나누려 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방문해온 마리아의 인사말이 들리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고 태중의 아기는 기뻐 뛰놉니다. 아기가 기뻐 뛴 건 마리아 태안에 계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지요. 이로써 요한은 천사의 예고대로(1,15)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가운데 하나가 예언이듯이(1코린 14,1) 요한은 이후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가 되지요(마태 11,14; 말라 3,23).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가득 차 예언의 은사를 발휘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일을 밝히기 전인데도 이렇게 인사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2-43) 이 대목에 따르면, 엘리사벳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칭한 첫 인물입니다.
이에 화답하는 마리아의 찬송이 우리가 잘 아는 ‘마니피캇’이지요. 마리아는 이 찬송에서 자신을 ‘주님께서 들어 높이신 비천한 자’의 전형으로 봅니다(1,48.52). 곧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기 같은 시골 처녀를 택하시어 당신의 계약 실현에 참여하게 하신 일을 기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세상 만민이 축복받으리라’ (창세 12,3)는 약속과 주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2사무 23,5)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니 그 기쁨이 오죽했을까요?
에인 케렘의 성모 방문 기념 성당에서는 ‘환희의 신비’를 생생하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시골 처녀 마리아를 귀하게 쓰셨듯이 우리도 귀하게 쓰시리라는 희망을 얻습니다. 그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화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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