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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성아 시인 / 네게 가는 시간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

최성아 시인 / 네게 가는 시간

 

 

속을 홀랑 뒤집어 하얗게 털고 싶다

 

먼지 낀 혀 놀림을 물살에 닦아낸다

 

과체중 뒤뚱거리는

 

욕심덩이 녹이며

 

 


 

 

최성아 시인 / 내 안에 오리 있다

 

 

햇살 여린 삼동 하천

오가는 인파 속에

시린 발 쬐고 있는 여유로운 오리들이

바람을 불룩하게 가르는 다운 떼에 놀란다

 

뽀송한 털을 채워 두둑이 겨울을 누빈

수백의 뒤뚱거림 활보하는 긴 산책길

두려워 흘깃거리며 찬 물속에 뛰어든다

 

추위를 팔기에도 다운 점퍼 제격인데

윗도리 잠금 풀면 피투성이 울음 샐 듯

꽁지깃 균열의 틈에

서걱거리는 상처들

 

 


 

 

최성아 시인 / 아름다운 자유

 

 

길 찾아 헤매느라 소리도 잃은 걸까

강에 다다른 하천 주눅이 들었을까

갇힌 채 야위어가는

입동 지난 물길들

 

마음껏 달려오다 옭매인 물살들이

안으로 부대끼다 서서히 닫아건 입

물소리 힘을 올리면 흐를 길이 열리겠지

 

바위 뚫고 나오는 아주 작은 틈을 본다

졸졸 힘 끌어 모은 아우성이 바람 타고

먼먼 길 물꼬를 트는

아름다운 저 자유

 

 


 

 

최성아 시인 / 직선과 곡선

 

 

구서에서 동래 가는 온천천 두 갈래길

빠르고 반듯한 느리고 구불구불한

망설임 오고 간 자리

생각자국 촘촘하다

 

잘 닦여 편해 뵈는 도시철 지상 구간

앞만 보고 내닫는 익숙한 시간에도

건조한 속력이 낳은 뒷모습은 야위고

 

달리다 앞지름도 풀섶 거닌 여유도

빠르면 빠른 만큼 느리면 또 그만큼

하루해 넘기고 받을

아우르는 길이 있다

 

 


 

 

최성아 시인 / 곡우

 

 

산책로 길섶으로 이별 흔적 늘어놓은

짧은 만남 뒤로한 팔딱이는 꽃잎 있다

어질한

생을 내닫다

바람 따라 드러누운

 

역류한 숭어들의 흩뿌린 비늘 몇 개

시간을 이어주는 봄 조각 주워들면

하천은 여름 덧대는

재봉틀을 돌린다

 

 


 

최성아 시인

경남 창원 출생. 본명: 최필남. 부산교육대학교 졸업. 2004년 <시조월드> 신인상으로 등단. 시조집 『부침개 한 판 뒤집듯』 『달콤한 역설』 『내 안에 오리 있다』 『아리랑 DNA』. 동시조집 『학교에 온 강낭콩』. 시선집 『옆자리 보고서』. 부산시조작품상(5회) 수상 등. 현재 부산 금강초등학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