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산 시인 / 입춘
먼 길 오는 동안 가느다란 빛으로 갈라진 손가락 열한 개 손가락 삼천삼백 개 손가락 칠천칠백만 개
오로라 지나 오존층 지나 베란다에 도착한다 잡히는 대로 어여쁘게 문지르고 어여쁘게 두드리는 반짝반짝 우주의 실핏줄
사랑초가 혀를 쏙 내밀고 시작하려는 이야기 먼지를 쓴 채 내 지하실에 잠들어있는, 이를테면 업힌 나를 깍지 낀 손으로 받치며 들려주던 노래 등의 울림과 번지는 목소리의 신비한 화음 따라 아주 먼 곳으로 나를 이끌던 그 자장가 그날처럼 내 이마 쓸어내리는 손가락들의 속삭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내가 잠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 부드럽고 다정하고 끈질긴 마침내 손의 나라에 도착한 나는 온몸에 꽃이 피어난 초여름의 원피스 깨금발로 거닐며 아무나 붙 잡고 차 한 잔 하실래요?
내가 즐거울수록 더 가늘어지는 손가락들 가끔은 웃는 태양 쪽으로 돌아서서 딸꾹 딸꾹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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