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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호 시인(영등포) / 봄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

이기호 시인(영등포) / 봄

 

 

갑자기

소문을 타고 올라온

너를 수습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들떠있다.

 

유혹의 몸짓,

까닭을 모르기에

허우대가 멀쩡한

나의 수습은

오늘도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두렵다.

 

 


 

 

이기호 시인(영등포) / 개나리

 

 

간밤에

노랑별 하나 내려와

길가에 숨었다.

 

햇살이 비추고

수줍은 노랑별 하나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어떤 이의 마음 하나

잡으려

길가에 종일 기다렸다.

 

 


 

 

이기호 시인(영등포) / 그대 들꽃처럼 아름다운 이름이여

 

 

누군가가 그리운 이름 말해보라 하면

봄꽃같이 반가운 그대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일상의 햇살처럼 곁에 머물 순 없지만

그 웃음,

샘물같이 맑은 얼굴 떠올리며

가슴으로 그대 이름 불러보겠습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중

유독 당신의 이름이

내 가슴에 그려지는 것은

알게 모르게 숨겨둔 애틋한 마음 하나가

한 사람을 향해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이름 말해보라 하면

들꽃처럼 산뜻한 그대 이름 불러보겠습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덧없는 삶도 멈춤을 잊었지만

가슴 속에 그대 한 사람 남긴 일은 생각하여도

일상을 가장 은혜롭게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마음을 향기롭게 만드는 꽃이었습니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던

마음속에 작은 소망들이 순정의 뜰아래 피어나는 날

봄볕, 맑은 하늘가에

나도 모르게 새겨진 그대 이름 다시 써보겠습니다.

다시 불러보겠습니다.

 

 


 

 

이기호 시인(영등포) / 목련꽃

 

 

선생님,

꽃이 활짝 피었답니다.

무슨 꽃인데요?

하얀 목련꽃이랍니다.

모르는 사이

꽃피는 춘삼월이 다가왔나 봐요.

 

며칠 전부터

봄옷을 갈아입은 교실,

백옥같이 하얀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목련꽃이 하얗게

피어났습니다.

 

 


 

 

이기호 시인(영등포) / 봄비 오던 날

 

 

하루해가 짧기만 했던 늦은 저녁,

의자에서 선잠을 자다가

쏘삭거리는 입방아에 눈을 뜹니다.

주변은 이미 화색을 잃어가는 밤

비틀거리는 음악이

거리의 젖은 풍경을 내려놓습니다.

자율학습을 끝내고

우산 없이 뛰어가는 아이들

그들 뒤로 먼지를 뒤집어쓴

은행나무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직 두려운 것은

제 분수를 모르고 뛰어들 것 같은

겨울입니다.

학교 화단 가에도

목련이 제 몸을 부풀리고

산천에 떠돌 아지랑이

풍문으로 들려올 날들 그리 멀지 않았지만

늑장부린 봄이 꼭꼭 숨어 버린 후

입방아 가득한 창가엔

날마다 침묵을 쪼아 먹던 은행나무가

제 이야기인양 듣고

자꾸만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이기호 시인(영등포)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02 <사이버신춘문예> 시 부문 신인상. 2004 계간 <문학의 향기> 봄호로 등단. 영등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현, 여의도여자고등학교 교사. 강화육필문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