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안미옥 시인 / 배움(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3.

안미옥 시인 / 배움(學)

 

 

두 손안에 세계

얼퀴고 설퀴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었네

 

내가 너인 듯

네가 나인 듯

 

유형의 물질 속에

무형의 본질을

알아채지 못하고

 

세상사

욕망의 늪에

헤매는 나

 

세상의 빛에 가려

어둠의 장막을 거두니

세상은 자연과 하나인

나를 본다

 

 


 

 

안미옥 시인 / 인仁은 함께 함이다

 

 

인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니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며

만물의 이치다

 

옛 성현의 말씀

비단 무늬에 새겨

도포 자락 하늘 높다

무명의 옷자락에

새겨진 충忠과 서恕

함께함이 아니던가

 

하늘과 땅

하나 되는

삼백예순날

인은

함께함이다

 

 


 

 

안미옥 시인 / 페인트

 

 

 책상처럼 앉아서

 네가 흘러내릴 때

 

 나는 보고 있다

 닦지 않고 그냥 둔다

 

 방관자는 건너뛰고 있다. 사과와 하품, 이면도로를 그 와중에 미끄러져 버리는 타이밍을.

 

 아주 좋은 집으로 고쳐줄게요

 

 벽에 문틀을 끼워 넣고,

 철계단의 녹을 칠하면서

 다음 집으로 이동할 때

 

 마주치지 않는 방향을 두고 방이 많을수록 닫힌 문이 많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늘 하나의 방에서 살았지만,

 

 주인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는 것. 단 하나의 문마저도 남의 것이어서. 나는 더 많은 방을, 더 많은 문을 만들고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집을 비워준다. 책상처럼 앉아 있는 나를, 흘러내리는 나를, 닦지 않고 그냥 둔다. 공사를 마치고,

 

 


 

안미옥 시인

1984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과정.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