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돈형 시인 / 두말할 나위 없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3.

이돈형 시인 / 두말할 나위 없이

 

 

 두통이 일었다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은 손 닿을 데 있어야 했지만 누가 먼저 두통을 앓았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고

 

 있을 게 없을 때

 비탈처럼 정해 놓은 것들이 하나둘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물 한 잔 따라 마시며 머리를 흔든다

 어디까지 가봐야 할지

 

 환기가 필요했다

 닫힌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젖히고

 

 두통의 원인을 검색하다가 겪어보지 못한 원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나 잠깐 창밖으로 떨어졌다

 

 먼 나라의 먼먼 나무열매처럼 나와는 상관없이 내리는 그곳의 비처럼 실수를 자꾸 떨어뜨려

 

 내가 낳은 두통이 나를 낳아

 마르고 닳는 일만 남았을 때

 

 바람이 머리를 강타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칼바람에 두 번 다시 머릴 흔들 수 없었다

 

 앓고 나도 다시 앓아야 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이돈형 시인

충남 보령 출생. 충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2012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우리는 낄낄거리다가』(천녀의시작, 2017)와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걷는사람, 2020) 『잘디잘아서』가 있음. 2018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2019년 애지작품상 수상. 2022년 제3회 선경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