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형 시인 / 두말할 나위 없이
두통이 일었다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은 손 닿을 데 있어야 했지만 누가 먼저 두통을 앓았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고
있을 게 없을 때 비탈처럼 정해 놓은 것들이 하나둘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물 한 잔 따라 마시며 머리를 흔든다 어디까지 가봐야 할지
환기가 필요했다 닫힌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젖히고
두통의 원인을 검색하다가 겪어보지 못한 원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나 잠깐 창밖으로 떨어졌다
먼 나라의 먼먼 나무열매처럼 나와는 상관없이 내리는 그곳의 비처럼 실수를 자꾸 떨어뜨려
내가 낳은 두통이 나를 낳아 마르고 닳는 일만 남았을 때
바람이 머리를 강타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칼바람에 두 번 다시 머릴 흔들 수 없었다
앓고 나도 다시 앓아야 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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