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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영택 시인 / 들판을 몰고 가는 소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3.

서영택 시인 / 들판을 몰고 가는 소

 

 

어린 소가 햇살을 뜯고 있다

오후 두 시를 먹이는 것은 초록의 차지다

 

일찍 철이 든 까닭인가

들판은 게으름 없는 바람을 부려놓는다

 

울음도 어리고

뜨거운 숨소리도 어린 그 시절

나를 몰고 산으로 가는 소야

 

한 방울의 뜨거움을 되새김하던

맑고 순한 눈동자가 나를 끌고 간다

휘어진 언덕 끝으로 세상을 몰고 간다

경사는 더 심해지고 접힌 그늘의 무릎이 무언가를 삼키고 있다

그 안에 용광로 같은 뜨거운 태양과 간밤에 몰아치던 폭풍우가

함께 섞여 있다 느린 듯 끊임없이 몰고 가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

허공을 가득 채운다

 

소도 소년도 없는 들판

나는 어디에 서서

어린 소의 울음을 듣는가

너무 늦게 철이 든 까닭인가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서영택 시인

경남 마산에서 출생. 2011년《시산맥》으로 등단. 시집으로 『현동381번지』(한국문연, 2013)와 『돌 속의 울음』(서정시학, 2020)이 있음. 2020년 문학 나눔 도서선정. 조지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