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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보슬 시인 / High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

최보슬 시인 / High

 

 

트럼플린을 뛴다

무언가 들춰질 사람처럼

 

활기찬 심장을 내세우고

심판의 문턱이라도 넘을 것처럼

 

잠깐 나 좀 보실래요?

세계가 발밑에서 나를 놓쳐요

 

아니, 그것보다

내가 너무 많아 창피했어요

이렇게 드러난 것이 많은데

 

나는 나의 손을 잡고

흔들리는 정면들만 움켜쥐었다

 

새벽에도 트럼플린을 뛴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영혼을 떨어뜨릴까?

 

만질 수 없는 것은 이토록 다 운명적일까

 

영혼은 한 자리에 있지 못해서

나는 그냥 트럼플린을 뛴다

신에게 닿으려는 의도는 아니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 어딘가 좋아질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악몽들은 내게서 다시 생기를 얻고

 

이것은 끔찍한 적선이야

뒤바뀐 얼굴을 갖는 일이지

 

그렇다면 잠깐 나 좀 봐 주실래요?

나는 내일의 나에게서 유실되어요

 

분명해

나는 나를 통해 분실될 거야

나는 나를 이용해서 내려올 거야

 

나만 가져본 옛날의 아이를 찾으며

아이처럼 트럼플린을 뛴다

이때 만큼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마음으로

아무데나 높이 오르면서

 

이것은 순전히 육체의 파티다

 

뛰어 넘을수록

한 방울씩의 내가 필요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최보슬 시인

전라남도 광주에서 출생. 2023년 《문학뉴스》 & 《시산맥》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