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시인 / 정중한 대화
이 의자는 나의 시선을 방해하는 자 저리 가줄래 마음속으로 너를 움직인다 너는 내 마음을 읽는 시간이 부족한 채로 나의 손에 등 떠밀려 우양우 좌양좌
혹은 우향우 좌향좌
이 둥글레차는 새벽의 불길을 받고 태어난 양 두 마리 입술에 가져가기도 전에 아, 뜨거워 용의 열기를 훅 뿜는 나는 너의 마음을 읽기도 전에 마우스를 움직이고 자판을 두드린다
양과 용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나는 양에 용 세 마리 건다 너는 용에 양 다섯 마리 건다
내기는 일생에 도움이 안 돼
노름의 사슬에 끌려다니던
너와 내가 도움 되려고 숨쉬고 산 건 아니니까
저 안경은 내 목을 중독시키는 바다의 출렁거림 알았어 라고 끝까지 말할 때까지 내 식도에 소금물을 무한대로 퍼붓는 잔인한 속성을 가진 양떼들
저 음악은 육체를 쉬어가게 하는 그네 지친 육체여 다시는 눈을 뜨지 말아라 이건 뭐지 진정한 화해와 위로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꽃병들이 식탁 모서리로 떨어지고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식탁에 의젓하게 앉은 상어알 부부는 전채요리에 대한 기대로 들뜬 콧방울이 충만해 보여
송진 시인 / 바람
힘들 때는 단어를 거꾸로 부르지 그러면 마음이 조금 고요해져 람바 람바 람바 상처는 오래된 거야 아마 태어나기 직전, 태어나고 바로일지도 아버지는 간디스토마였지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 병 낫게 해달라고 빌었대 아버지는 병 나았지 아버지는 병 나았지 나는 평생 그 빚 갚느라 세상의 구덩이란 구덩이는 다 메우고 있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병을 얻었지 그래도 죽지도 않아 아직 더 파야하는 구덩이가 있대 더 이상 업을 짓지 말자 별을 한 마리 데려다 키우자는 네 말에 람바 람바 람바 사는 건 새벽의 흰 욕조에 기어오르는 흰 아기 거미를 휴지로 둘둘 말아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아슬아슬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낭만적인 노을의 기지개
-시집 『복숭앗빛 복숭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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