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시인 / 당신을 구하는 문제
대괄호를 열면 당신은 오래된 전축처럼 먼지 아래 있다 혼이 없는 당신도 당신이라면
답이 먼저입니까 문제가 먼저입니까
괄호 밖 당신이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건다 햇빛 아래 부유하는 먼지들 가난에 어울리지 않는 선율은 아름다운 폭설같다
중괄호를 열고 나는 나의 기억순으로 당신의 시간을 약분하고 물구나무를 한 당신은 우려낸 당신들을 마셔버린다
슬픔의 꼭대기에선 우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요 선택을 미루는 법을 몰라 되감기로 웃고 말아요
괄호를 열자 빈 당신이 펼쳐져 있다 당신이 떠나야 완성되는 당신의 푸가 당신만이 들을 수 없는 당신의 응답 슬프게도 먼지만이 당신 위에서 춤을 춘다 햇살 아래 죽음은 아무 일도 아니지 괄호를 닫는다 문제의 반대편에 나만 남는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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