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은 시인 / Sea glass
누군가를 담았던 병 파편의 모양은 바뀌었지만 기원의 색을 잃지 않았다 고래가 삼켰다가 배설하고 불가사리의 죽음이 으깨어져 흔적 없이 사라진 동안에도 녹지 않았다
다정하게 품어주던 세계에게 모서리만 조금 떼어줬을 뿐 베고 베이고 찌르고 찔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서로의 피를 흘리기도 하면서 마시기도 하면서 형형하게 다듬어진 생채기의 조각들 오랜 시간을 건너 여기 해변으로 왔다
끓어오르던 노을 차디찬 달빛 파도에 휩쓸려 기억의 모래밭에 당도했다 작디작은 울음들이 옹알이처럼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눈동자 속으로 빛과 어둠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비집고 들어온다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매혹 어떤 끝이 시작된다
계간 『시와 징후』 2023년 봄호(창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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