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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채종국 시인 / 네 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2.

채종국 시인 / 네 시

 

 

 네 시를 마중 나간다 멀리서 나를 반기는 네 시를 따라 길을 나선다 네 시가 강변에 닿을 때쯤이면 가로등 눈빛이 맑아지고 별들이 귀를 밝힌다

 

 네 시의 눈을 바라다보면 눈동자에 비치는 당신의 얼굴 네 시는 당신을 이야기하고 나는 당신을 뒤척인다 당신을 뒤척일 때마다 별들이 지상에 가까워진다 강물의 어깨가 출렁인다

 

네 시가 당신을 말할 때

별들의 귀를 훔쳐 당신을 듣는다

 

잠에서 깬 새들이 기지개를 켠다

 

나와 당신과 네 시

 

네 시가 올 때쯤이면, 당신이 가장 그립다

 

당신은 지금

 

달빛도 눈이 먼, 새벽 네 詩

 

계간 『시와 징후』 2023년 봄호(창간호) 발표

 

 


 

 

채종국 시인 / 사과

 

 

 나비를 숨긴 정물의 둥근 사각 소리. 말머리성운 너머 붉고 푸른 항아리 성운 지나 별의 죽음을 안갯속에 감추고 우주의 한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껍질을 베어내면 사각사각 별이 떨어지고 분화구 밑 빙벽에선 창백한 향기가 미끄러질 적. 햇볕의 둔탁한 목소리 가지 끝 흔들고 홍조 띤 그림자엔 주근깨 가득한 밤이 푸르네. 주렁주렁 붉은 어둠이 저녁의 가지에 매달리면 향기로운 허블 울트라 딥 필드* (불꽃 성단 너머) 맨살 드러내고, 배꼽 안에 나비를 숨긴 엎드린 정물, 제 살을 내어주어.

 

오므린 신의 손이

정령의 귀를 찍어내는 별 내리는 저녁

붉은 초록 은하, 둥근 사각 소리에

온 우주가 침을 삼키는 밤

 

* 허블 우주 망원경이 약 1만 개에 이르는 은하를 찍은 사진을 말함.

 

 


 

채종국 시인

1970년 광주에서 출생. 2019년《시와 경계》를 통해 등단. 2016년 신라문학대상 수상(시조).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전남지역작가 회원, 대중서사연대 회원,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