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민재 시인 / 석류와 석류
씨 하나가 말 한마디씩 다 해야 석류 머리 터진다네
아홉 번째 열두 번째 씨앗도 오늘내일 오늘내일 오지 않은 미래가 궁금하고
하나같이 울며 왔다 울며 가는 사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원수처럼 붙어 서로를 오염시킨다네
알 알 알 이 세계는 단단하지 않다네 죽지않을 만큼 쑤셔 박힌 폭탄
쩌억 벌리고 앉은 아저씨가 사람들이 비웃는 이유를 모르고 계속 가듯
이 붉음은 한목소리가 아니라네 하나의 역사 하나의 사연 하나의 중심 이건 싫다네
잠가 닫아 우리위해 기도해도 아무것도 돌아오는 게 없듯
함께 햇볕 받고 자라도 우리 안의 근심이 모두 달라
천 가지의 표정과 한 가지의 얼굴과
같은 죄로 묶을 수 없다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네
너는 여자라서
빨강이 아니라서
알몸으로 조용한 모과 옆에 툭,
옳지
서정 없어도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으로 지구를 동네를
석류는 오로지 터지는 것이 목표이며 일인이거나 일당백이거나
골방에서 피를 나눈 형제니 자매니 근친상간이니
시집 『그래, 라일락』(시인의일요일, 2023) 수록
석민재 시인 / 수련이 흔들리고
개구리 머리에는 개구리 세상이
내 머리에는 온 세상이
더 큰 그림은 아홉 시 방향
마음 바뀌면
수련 하나
그녀의 손이 그의 이마 위에 또다시 자유의 해가 뜨고 두통 위에 하얀 손수건
골리앗의 머리가 골리앗이 아니라면
전에 꾸었던 꿈
어려운 데로 떠난 개구리가
벽감에 있는 십자가가
기분에 따라 산다 기분에 따라 산다
물을 바른 것처럼 단정한 머리가
천천히 달려온다 내 것 가져가 손들과 손들을 둘 데가 없는 것과
거대한 이마를 숙이면
수련 줄기가 기묘하게 뇌 안에서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3년 봄호 발표
석민재 시인 / 저글링을 하다
내가 던지고 내가 받는
쌍욕이다
네가 던져도 내가 받는 모욕이다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 보면
칭찬 같은 치욕이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어느 고리에 내 모가지를 걸어야 할까
망설이는 순간이 무덤이다
무덤인 줄도 모르고 파는 우물이다
아나, 마셔라!
바가지째 들이켜는 굴욕이다
대머리를 가리려고 쓴
민머리 가발이다
시집 『그래, 라일락』(시인의일요일, 2023)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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