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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경림 시인 / 사람 지나간 발자국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1.

이경림 시인 / 사람 지나간 발자국

 

 

아름다워라 나 문득 눈길 머물러

그것의 고요한 소리 보네

누군가가 슬쩍 밟고 갔을

저 허리 잘록한 소리

한참 살다 떠난 부뚜막 같은

다 저문 저녁 같은

 

-시집 <시절하나온다, 잡아먹자>(창비) 中

 

 


 

 

이경림 시인 /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7월이 왔다.

 뭔가 또 다른 한 획이 그어지는 날인 듯하다.

 

 정치적으로는 대선 예비경선과 본 경선을 거치며

 난무할 흑색선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게 뻔하고,

 코로나19 방역으로 백신 접종률은 높아가도 아직도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듯 홍대발 원어민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하고,

 

 장마철이 다가오고

 무더위와 매미의 울음도 기다리고 있는 계절.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가볍게 시집을 한 권

 펼쳐든다.

 

-시집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에서

 

 


 

 

이경림 시인 / 안

-푸른 호랑이 20

 

1

미이이이이

저 ---쪽에선 한생 날개만 짰네

돌부리 같은 어둠을 풀어 한 올 한 올 짰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칠흑이었다고

어느 거대한 나무뿌리 밑이었다고

흙과 흙 사이 투명한 무슨 껍질 속이었다고

한정 없는 하루였다고.......

어느 날,

내가 짠 날개가 겨드랑이에서 요동쳤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끌고 위로, 위로 솟구쳤네

나, 그저 날개를 따라왔네

와서, 이녁이 되었네

이녁의 울음이 되었네

한 이레 울다 간 날개가 되었네

2

이 밤, 나

어느 집 방충망에 붙어, 안을 보네

저 환한 속......

어느 생인지......

인간의 아이 하나가 뒤뚱, 걸음마를 하네

식구들, 해바라기처럼 둘러앉아......

야아...... 저 풍경!

어느 생에선가 본 듯도 해

저 파르스름한 얼음 빛 불 속은 너무 낯익어

나도 몰래 미이이이이......

울음이 새는데,

그때,

-- 야! 매미다!

누군가 소리쳤네

 

 


 

이경림 시인

1947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1989년 계간 《문학과 비평》을  통해 〈굴욕의 땅에서〉외 9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 먹자』 『상자들』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급! 고독』. 산문시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그밖의 저서로는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와 비평집 『관찰의 깊이, 사유의 깊이』가 있다. 제 6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제1회 윤동주서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