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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석민재 시인 / 석류와 석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1.

석민재 시인 / 석류와 석류

 

 

씨 하나가 말 한마디씩 다 해야 석류 머리 터진다네

 

아홉 번째 열두 번째 씨앗도

오늘내일 오늘내일 오지 않은 미래가 궁금하고

 

하나같이

울며 왔다 울며 가는 사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원수처럼 붙어 서로를 오염시킨다네

 

알 알 알

이 세계는 단단하지 않다네

죽지않을 만큼 쑤셔 박힌 폭탄

 

쩌억

벌리고 앉은 아저씨가

사람들이 비웃는

이유를 모르고 계속 가듯

 

이 붉음은 한목소리가 아니라네

하나의 역사 하나의 사연 하나의 중심 이건 싫다네

 

잠가 닫아

우리위해 기도해도 아무것도 돌아오는 게 없듯

 

함께 햇볕 받고 자라도

우리 안의

근심이 모두 달라

 

천 가지의 표정과 한 가지의 얼굴과

 

같은 죄로 묶을 수 없다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네

 

너는

여자라서

 

빨강이 아니라서

 

알몸으로

조용한 모과 옆에 툭,

 

옳지

 

서정 없어도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으로

지구를

동네를

 

석류는 오로지 터지는 것이 목표이며

일인이거나

일당백이거나

 

골방에서 피를 나눈 형제니

자매니

근친상간이니

 

시집 『그래, 라일락』(시인의일요일, 2023) 수록

 

 


 

 

석민재 시인 / 수련이 흔들리고

 

 

개구리 머리에는 개구리 세상이

 

내 머리에는 온 세상이

 

더 큰 그림은 아홉 시 방향

 

마음 바뀌면

 

수련 하나

 

그녀의 손이 그의 이마 위에 또다시

자유의 해가 뜨고 두통 위에 하얀 손수건

 

골리앗의 머리가 골리앗이 아니라면

 

전에 꾸었던 꿈

 

어려운 데로 떠난 개구리가

 

벽감에 있는 십자가가

 

기분에 따라 산다 기분에 따라 산다

 

물을 바른 것처럼 단정한 머리가

 

천천히 달려온다 내 것 가져가 손들과 손들을 둘 데가 없는 것과

 

거대한 이마를 숙이면

 

수련 줄기가 기묘하게 뇌 안에서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3년 봄호 발표

 

 


 

 

석민재 시인 / 저글링을 하다

 

 

내가 던지고 내가 받는

 

쌍욕이다

 

네가 던져도 내가 받는 모욕이다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 보면

 

칭찬 같은 치욕이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어느 고리에 내 모가지를 걸어야 할까

 

망설이는 순간이 무덤이다

 

무덤인 줄도 모르고 파는 우물이다

 

아나, 마셔라!

 

바가지째 들이켜는 굴욕이다

 

대머리를 가리려고 쓴

 

민머리 가발이다

 

시집 『그래, 라일락』(시인의일요일, 2023) 수록

 

 


 

석민재 시인

1975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 2015년 《시와 사상》 신인상을 수상 등단.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 『그래, 라일락』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