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시인 / 그들의 이별
들꽃은 꽃잎으로 바람을 움켜잡습니다
바람은 놓아 달라 합니다 들꽃은 뿌리 탓에 따라가지 못하고
흔들게 하다 흔들리다 속절없이 서로의 손을 놓아버립니다
바람 불 때 들판에 가보세요 이별도 아름다운 소리 낼 때 있답니다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
이기영 시인 / 별빛에 싸여 있던 이야기
산중턱 마을이 저물면 별들이 먼저 달려온다
평상에서 잠자다 오줌누러 감나무 밑에 가면 은하수는 흐르다 산봉우리에서 여러 조각으로 흐르고
장마 질 때 불어난 강 건너 매어진 빈 배 뱃사공 부르던 머슴아는 누굴 만나러 애태웠는지 할머니께서 들려주지 않아도 마을 입구 나리꽃은 여전히 별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
이기영 시인 / 느린 우체통
꽃편지지에 간절한 시 한 편 싣고 머뭇거리던 손길을 기억하다 붉은 노을 우체통 더해 잊었던 주소 뒤에 남겼던 이름
우편함 앞에서 인기척 느끼면 두근거리는 가슴까지
시간 따라 한 칸씩 계단을 그어 층층이 오르다
꽃편지지보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우체통 앞에서 다시 서성이고 싶었지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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