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시인 / 너를 사랑하기 위해
때로는 침묵이 가장 아름다운 말이듯 때로는 두 눈을 감는 것이 가장 뜨겁게 보는 일이듯
너를 사랑하기 위해 혀를 잘라버린다 두 눈을 뽑아버린다
한 알 콩잎이 썩어 줄기를 밀어올리고 잎을 달아 콩 꽃 수북수북 일 듯이
너를 꽃피우기 위해 나를 땅 속 깊이 묻는다
정일근 시인 / 잔
시인이 앉아 시를 쓰는 밥상 위의 잔 바다로 가득 차 있는 둥근 물 잔 스스로 돌면서 노는 푸른 잔 떠났다가 마감 시간에 다시 돌아오는 잔 밤이면 웅크린 등 위로 별이 떠 반짝이는 잔 시인이 목이 마를 때 단숨에 마셔버리는 궁극의 잔, 그 잔 속 내가 있고 내 잔 속에 그 잔 놓여 있어 시인이 잠들지 못할 때 갈증 가득 차 있는 잔 비우고 나면 시가 그득하게 담겨 있는 빈 잔.
정일근 시인 / 사랑, 그 불변
하늘이 생긴 이후, 단 한 번 같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바다가 생긴 이후, 단 한 번 같은 바다를 보여주지 않았다
하늘 아래 삼라만상이 그러하다 바다 아래 생명 가진 것도 그러하지만
그대에게 보낸 첫 웃음 이후 내가 보낸 웃음은 늘 같다
내 심장이 그대를 향해 뛰는 일 처음부터 지금까지 역시 똑같다.
ㅡ웹진『공정한 시인의 사회』(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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