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경 시인 / 석기 동무
이른 봄비가 싸르륵 싸르륵 새어드는 밤 자꾸 석기 동무 생각난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석기 동무 석기는 아랫집 5남매 중 막내이고 우리집은 누나 하나 나 하나 담장 하나로 얼굴 보며 석기야 노올자! 재복아 노올자! 나란히 토끼풀 뜯으며 놀다 논도랑에 새 고무신 한 짝씩 떠나보내고 단석산 그림자 황금으로 나리는 아래윗집에서 야단맞았지 석기가 소꼴 먹이러 가면 쫄래쫄래 내가 박시고개 솔잎 긁으로 가면 석기도 쫄래쫄래 석기 누나 우리 누나 밤낮없이 뭉쳐 나팔바지 멋 부리며 경주 시내 쏘다니고 우리집 골방에서 놀다 잠들고 놀다 잠들고 동네 누나들 중 유일하게 내 고추를 본 석기 누나 수리도랑 미꾸라지 잡다 엉망이 된 옷들을 풀어헤치고 누나들이 앞뒤로 밀어주는 때수건에 우리는 아프다 소리만 질렀지 그렇게 석기네는 키 낮은 빗금 하나가 유일한 분리선 그렇게 석기는 고향의 짝동무인데 어느 사이 얼골 안 본 지 40여 년 언제 그 어릴 적 눈망울을 마주 할거나 석기 누나 치매로 고생한다는 소문이고 석기 동무 별안간 너무 보고픈데 어깨동무 석기 동무 어디 있나 자르륵자르륵 비들은 울다 쉬고 울다 쉬고 나는 옛동무 생각으로 쉬 잠들지 못하고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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