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 시인 / 우산들
비는 모든 존재의 키를 키운다지 어쩌면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기 위해 내리는지도 몰라 꽃을 탐하는 비의 건널목으로 산란하는 우산 하나 , 둘 그리고 우산 셋 물비린내 날리는 여자가 위태롭게 걸어간다 화려하게 치장한 나비처럼 알록달록 동그랗고 투명한 얼굴들 목줄 풀린 개가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울퉁불퉁 휘청거리는 비 , 당신을 잃어버리겠어요 나 , 비 , 나비를 꿈꾸는 노랗고 빨간 지느러미 비의 몸뚱이들 후드득 후드득 앞 다투어 뛰어내리는 오독의 문자들 백색소음에 출근길이 저만치 달아난다 시집 『우산들』(한국문연, 2023)수록
박지우 시인 / 회화나무 그늘 아래
은유는 수직적 도약이다 야콥슨의 말이 뒤뚱거린다 비에 젖기도 하고 고양이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피뢰침에 걸린 구름 오후가 종종거린다 바슐라르를 읽어야겠다 물이 어떻게 불꽃으로 바뀔 수 있는지 앞집 지붕 위 풍향계가 어떻게 바람을 감는지
환유는 곁눈질이다
인사동 스타벅스에 앉아 밖을 들여다본다 회화나무의 말랑말랑한 그늘로 오토바이 한 대가 그늘진다 깃발을 든 관광객들이 인증 샷을 할 때마다 유리창이 움푹 파인다 사이렌의 파란 비명이 날카롭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언젠가 당신이 던진 아무리 데워도 녹지 않는 말, ‘너는 나의 은유야’ 가 방울져 대롱거린다 회화나무 그늘이 깊다 시집 『우산들』(한국문연, 2023)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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