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 시인 / 깡통
툭, 차버리고 싶은 감정과 툭 차이는 감정 중 소리를 내는 것은 어느 쪽일까 채워지기 전과 채웠다 비워낸 공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시끄러울까 통과 깡통의 차이, 깡통을 차다와 깡통 차다 사이 만들어질 때 미리 담긴 소음인지 비워진 후의 울림인지 깡 찬 소리가 난다 몇 배 새끼를 빼낸 뒤 뱃가죽 축 늘어진 늙은 돼지를 이르기도 하는 속된 말, 깡통이 뭐길래 깡통을 보면 차고 싶어지나 그 속에서 뭐가 튀어 나와 참새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나 깡통을 깡통으로만 아는 순 깡통들, 납작하게 눌러 밟아버리면 차라리 나을 건데 톡, 톡, 누군가 자꾸 나를 걷어차기만 한다
김유석 시인 / 천형天刑
네 쌍의 눈을 달고도, 공중거미는 먹이를 직접 사냥하지 못한다.
형체가 흐릿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공중에 줄을 치면서부터
또렷하던 그의 홑눈은 여러 겹 상을 맺는 겹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냥 대신 기다림이 생긴 그 후, 진화와 퇴화가 동시에 멈춰버린 공중에
거미는 거꾸로 매달려 살게 되었다. 거꾸로 보면
세상이 잠깐 또렷해지거나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기 때문 일거다.
김유석 시인 / 영역(領域)
줄이 풀리자 득달같이 문간으로 달려간 그는 찔끔찔끔 오줌을 지려댄다. 오랫동안 응시했던 곳, 마당 구석이나 뒤울안 자주 귀를 부스럭거리게 하던 곳을 발톱으로 긁어가며 가장 원초적인 저의 냄새를 묻힌다.
눈길이 닿지 않는 곳 먼 소리가 오는 곳까지 미치는 줄 알았다.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성가시게 해온 줄 알았으나
그를 묶어놓은 것은 겨우 그의 똥오줌 냄새가 뻗히는 곳
찌그러진 밥그릇이 보이는 그 안을 쫑긋거리고 짖어댔던 것이다. 물어뜯을 듯 당기던 앙칼진 사슬은 느슨해지는 그 주변을 경계하는 거였는데
묶어야만 보이고 들릳던 것들 줄과 함께 사라지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하고많은 밖이 찾아들기 시작했다.홀연 묶였던 자리 꼬리만을 남겨둔 채
그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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