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이달의 성인] 성 요한 다마센(657-749)

by 파스칼바이런 2010. 4. 29.

[이달의 성인] 성 요한 다마센(657-749)

윤 클레멘트 신부

 

 

 

이슬람(Islam)의 창시자 모하마드(Mohammad, 570/571-632)가 세상을 떠나고 5년 후에, 빠르게 이슬람의 도시가 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Damascus)에서 그는 태어났다.

그는 마지막 그리스 교부로 일컬어지는데,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재정 관리로 일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고 일찍부터 그리스도인 교육을 받는데, 그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은 시실리에서 노예로 팔려왔다가, 요한 마다센의 아버지가 고가(高價)를 지불하고 데리고 온 고스마(Cosma)였다.

 

그는 고스마로부터 풍부한 신학적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43세가 되던 무렵에 그 도시의 재정 관리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고, 예루살렘 근교의 마르 사바(Mar Saba)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 수도원은 성 사바(Sabas, +531/532)가 시작한 수도원으로서, 한 성당을 중심으로 은수자들의 오두막이 둘러있는 독거(獨居) 수도원이었다.

수도자들은 각기 고독한 삶을 살아가면서, 전례나 수도원의 어떤 일들에만 다함께 모이곤 했다.

 

그는 그 독거 수도원에서 주로 신학원 저술을 하면서 고스마가 노래한 시편들을 작곡했다.

그런데 다른 수도자들이 고요한 생활을 방해한다고 불평들을 하자, 두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요한 5세는 요한 다마센과 고스마를 그 수도원으로부터 나오게 한다.

그리고 고스마를 주교로 임명하고 요한 다마센에게는 사제품을 준다.

하지만, 그 어떤 관리 직무에도 맛을 못들인 요한 다마센은 다시 마르 사바 수도원으로 돌아온다.

 

상본과 거룩한 그림들에 대한 흠숭가인 그가 열정을 다해 썼던 신학 저술들 중의 하나는 '상본(像本, Icon)들에 대한 흠숭'이었다.

그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흠숭받아야 하고 귀중한 전통은 보존되어야 한다면서 옹호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동방의 황제들은 성상파괴론자(聖像破壞論者)들이어서, 상본들에 대한 흠숭과 전례를 지키는 이들을 박해하였다.

 

그래서 그는 무슬림 지역의 안전한 친척 집에서 저술을 계속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신학과 철학의 모든 분야들을 망라하였는데, 그는 본래부터 사상가가 아닌 사상의 한 위대한 조직가(組織家)였다.

그는 위기와 논쟁의 시대에 동방교회를 한결같이 연구하여 정통 그리스도인의 한 종합을 이루어 내었다.

 

그의 주요한 작품은 '지식의 원천'(The Fount of Knowledge)인데, 그리스 철학 - 존재와 물질, 행동과 가능성 등등 - 의 고전적인 관심들을 진단한다.

특히 '지식의 원천' 제3부는 '정통신앙에 대하여'(De Fide Orthodoxa) 말하는데, 하느님의 본성, 창조, 그리스도의 본성, 교회의 목적,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등을 다룬다.

 

그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 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사랑으로 보았는데, 교회가 하느님 사랑의 그 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한다고 썼다.

 


 

축일 12월 4일 다마스쿠스(Damascus)의 성 요한(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