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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대사들 / 한스 홀바인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25.
대사들 / 한스 홀바인

 

대사들 / 한스 홀바인

(1533년, 캔버스 유화, 207x20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년)은 독일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그는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무어의 후원으로 영국 왕실의 화가이자 서구의 16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명성에 걸맞은 그림이 ‘대사들’이다.

 

홀바인이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16세기 유럽의 정치 · 종교적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유럽은 과거의 확신이 과학의 발전과 발견에 의해 붕괴되고 있었으며,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신교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교황에게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신청하였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의 눈치를 본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캐서린이 스페인 아라곤 왕의 딸이기에 헨리 8세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자 영국은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국교로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영국과 교황청 간의 갈등을 심히 우려하였던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이 갈등을 해소하고 유럽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외교사절을 영국에 파견한다. 영국 특사로 그 외교 임무를 수행한 사람이 댕트빌(그림 왼쪽)이다. 그러나 그의 임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그 때 해소되지 못한 종교적 갈등의 앙금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다만 앤 불린이 왕비가 된 1533년 4-5월에 제작된 이 그림만이 당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할 뿐이다.

 

그 옆의 인물은 댕트빌의 절친한 친구이자 프랑스 라보르(Lavaur)의 주교직을 맡고 있던 셀브로 종교개혁 후 가톨릭 내부의 개혁을 부르짖던 인물이다. 이들 둘은 당시 권력과 지성, 교양을 두루 갖춘 당시의 정치와 종교계를 대표하던 실세들로 이들의 각각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의상이 이런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두 인물 사이의 탁자에 놓인 오브제들을 보자. 세밀하게 묘사된 이 물건들은 당시의 지적 · 종교적 세계를 암시하는 물건들이다. 위에는 천구의와 휴대용 해시계, 사분의, 다면 해시계, 토르카튬 등 천문학과 시간 측정, 항해술과 연관된 도구들이 즐비하다. 이른바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축적된 것들이다. 특히 천구의의 그림은 닭이 독수리를 공격하는 형상으로, 프랑스(닭)가 유럽(독수리)에서 차지할 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면 해시계에 맞추어진 4월 11일 10시 30분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이혼 날짜와 이혼서의 서명시간, 곧 영국과 로마의 결별, 유럽의 분열과 위기의 시간을 재현하고 있다.

 

테이블 하단에는 지구의와 수학책, 삼각자, 컴퍼스를 비롯해 옛날의 기타와 피리 그리고 성가집이 있다. 특히 수학책은 1527년 독일에서 출간된 상인의 산술교본으로, 펼쳐진 부분은 ‘나눗셈(Division)’은 실제의 ‘division(분열)’을 암시한다. 특히 악기는 조화의 상징인 바, 기타 줄 하나가 끊어져 있음으로 보아 역시 유럽의 조화에 이상이 생겼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또한 펼쳐진 성가집은 1524년 요한 발터가 출간한 프로테스탄트 성가집으로, 그 양 페이지에는 루터파의 성가인 ‘성령이여 오소서’와 십계명을 뜻하는 ‘인간이여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이라는 구교의 중요한 노래가 나타나있다. 이는 분열된 종교계의 화합을 원하는 당시 지성인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이 그림 속에는 이런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오브제들 이외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바로 이들의 발치 아래에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 모습이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다. 드러나되 그것이 무엇인지를 감추는 기법, 곧 왜상(歪像, anamorphosis)이다. 바로 이 형상이 이 그림의 핵심이요 생명이다.

 

이 형상은 바로 죽음의 이미지인 해골을 길게 늘여서 그린 것이다. 이 형상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면 둥근 유리잔을 이 형상에 갖다대어야 한다. 그러면 형상이 좌우로 축소되면서 해골의 이미지가 온전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이 그림 앞에서 인물과 지식의 찬연함에 잔을 들어 건배하는 순간 그 잔에 해골 형상이 박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자신의 성 거실에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놓고, 그 성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경배의 대상이 되길 원했다. 그리고 방문객은 잔을 들어 그 초상화에 건배와 경의를 표하고 잔을 비웠는데, 잔을 든 순간 그 잔에 교묘하게도 해골이 맺히는 것이다. 순간 드러난 이 해골의 형상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의미로 다가오며, 결국 이 화려한 형상을 창출한 인간의 오만에 경종을 울리는 죽음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 해골은 댕트빌의 좌우명과 연관이 있다. 그는 한 나라의 공직자로서 행여 자신의 판단에 사심과 사리사욕이 깃들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늘 죽음을 생각하라!”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 이 순간도 자신의 욕심과 편견에 사로잡혀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안위라는 대의명분을 저버리지는 않는가?’라고 늘 염려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청렴한 공직자로서의 마음에 그의 베레모에 달린 해골형상이 화답하고 있다. 실제 인간이 이성과 지식을 통해 구축한 지적 · 종교적 세계가 하느님의 눈에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바로 그림의 왼쪽 상단 벌어진 커튼 사이로 살짝 보이는 은제 십자가가 이런 인간의 모든 허영과 사치,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 인간세계의 모든 형상은 하느님의 은총과 보호 속에 있으니, 모든 인간이여, 오만과 편견, 대의명분을 저버린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진실하고 공정하며 공평한 사유와 행위를 하라.’ 하고 홀바인과 댕트빌은 동시에 말하는 것 같다. 바로 죽음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 이외에 세속의 현실 등 무엇이 그리 중요하랴? 이런 진리를 깨우친다면 그림 속의 해골이 보이는 죽음은 진정한 삶과 생명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것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도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생명의 위안을 받고 싶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예술사 석사와 D.E.A. 과정을 마쳤으며, 파리 3대학교(Sorbonne Nouvelle)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