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가타리나의 순교 / 루카스 크라나흐 (1504-1505, 목판에 유채. 112×95 cm. 부다페스트 교회)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엄청나게 혼란스런 아수라장을 표현하고 있는 이 그림은, 독일 작센지방의 선제후인 프리드리히의 궁정화가로 중세 후기 고딕 화풍과 르네상스 화풍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한 위대한 화가이자 성공한 화상이며, 독일 비텐베르크의 시장을 역임한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년)가 그린 ‘성녀 가타리나의 순교’이다.
가타리나는 그림에서 늘 커다란 수레바퀴와 함께 등장하는 순교자로 역대의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아름다운 성녀이다. 그녀는 키프로스의 공주로 태어났으며, 막강한 권력자인 로마 황제 막시미아노가 그녀의 미모와 총명함에 반해 자신의 며느리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이 평소 가타리나가 바라던 배우자상이 아니었기에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황실의 혼사를 거절해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이런 가혹한 운명 앞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당연히 딸의 어머니이다. 결국 이들 모녀는 그리스도교 현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현자는 가타리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정신적 배우자로 삼으라고 권한다. 그 이유는 가타리나를 비롯해 현세에서 복을 누리는 모든 이는 하느님의 각별한 은총을 받았기에 이들의 주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가진 자들’의 희생과 봉사가 하느님의 섭리이자 이들의 사회적 의무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결국 가타리나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는다. 그러고는 어느 날 밤, 성모 마리아와 함께 현몽한 아기 예수가 그녀에게 반지를 하나 건네면서 “오, 나의 사랑스런 가타리나여! 너의 믿음이 내가 너를 배우자로 삼게 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런 가타리나의 일화는 그리스도교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곧 종교적인 사랑이 세속의 사랑보다 더욱 위대하다는 것과 하느님께서는 뜻에 따라 언제나 도움을 주신다는 것 말이다.
결국 가타리나는 개종과 결혼의 거부에 대한 황제의 막무가내식 추궁을 잘 극복해 내고, 화가 치민 황제는 나라의 모든 현인을 소집하여 그녀의 기를 꺾으려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타리나는 수많은 이교의 현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는 개가를 올린다.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황제는 개종한 현자들을 모두 화형시키고, 가타리나를 감옥에 가둬 굶어 죽게 한다. 그러나 하얀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다. 배고픔마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하자 황제는 결국 무시무시한 칼날이 달린 거대한 수레바퀴를 만들어 가타리나를 갈가리 찢어 죽이려 하였다. 이 끔찍한 참형 앞에서 가타리나가 하느님께 간곡한 기도를 올리자, 하느님께서는 천둥과 번개로 이 참혹한 살인도구를 박살내고 4천 명에 이르는 이교도를 죽음에 이르게 하셨다.
다시 한 번 죽임에 실패한 황제는 가타리나에게 참수의 형벌을 명하고, 그 순간 그녀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게 된다. 추하고 타락한 세속의 굴레에서 이 여인, 굳은 신앙인을 건져내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가타리나는 “나의 사랑하는 딸이요 아내인 가타리나야, 나에게 오너라! 너를 위해 하늘의 문이 활짝 열려있단다.”라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가 참수를 당하자, 어느 누구도 이 성녀의 시신에 손을 댈 수 없어 천사들이 손수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시나이 산에 모셨다. 이 사건 이래로 커다란 수레바퀴가 가타리나를 입증하는 상징물이 된 것이다.
크라나흐는 그림에 이 일화의 서로 다른 두 장면을 그려 넣었다. 그림의 중간에는 세차게 불이 붙어 내리치는 번개비에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권력의 달콤함에 물들어 무고한 살인의 전열에 섰던 자들이 망연자실, 땅바닥에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림 전경에는 그 이후에 벌어진 참수의 순간에 놓인 가타리나가 묘사되어 있다. 사나운 망나니의 우악스런 행동과 죽음의 공포에 주눅 들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것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그녀의 기도는 믿음의 승리를 뜻하며, 그녀에게 하늘의 문을 여신 하느님의 의지는 오직 강한 신앙만이 이 부패한 세상의 악과 불행에서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림 속 가타리나는 매우 아름답다. 강렬한 믿음을 뜻하는 그녀의 자줏빛 드레스는 진주로 장식되어 화려하고 호사하기 그지없다. 넓게 파인 목과 노출된 어깨, 투명한 천을 통해 살포시 드러난 그녀의 가슴이 상당한 인간적 매력을 보인다. 왜 화가는 이 성녀에게 육감적이며 세속적인 매력을 부가했을까?
교회는 인간의 육체를 ‘정신의 감옥’, 곧 사악하고 타락했으며 정신적으로 큰 부담일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자기 고행과 더불어 음식과 섹스, 세속적 사건에 얽힌 육체적 욕망을 억제하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가타리나는 초라한 옷을 입고 볼품없는 몰골로 그려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매혹적인 모습은 실상 육체적 욕망과 그 유혹의 승리자인 동정 마리아 이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황실의 결혼을 거부하고 아이와 부와 세속의 명예를 포기한 가타리나 역시 가난을 즐긴 순결한 마리아의 모습에 필적할 만한 것이 아닐까?
깨끗한 정신이 한 인간의 육신을 순수하게 만들고, 순수해진 그녀의 육신은 결국 ‘야훼 전’ 곧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의 육신’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가타리나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은 세속과 그 유혹에 대한 정신적인 승리의 상징이다. 그리고 신앙의 적인 세속의 유혹과 위험의 의미는 망나니와 뒤로 벌렁 나자빠진 황금갑옷의 기사가 착용한, 당시 남성복에 유행하던 커다란 주머니 같은 음부 장식물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큰 칼을 들고 가타리나의 목을 노리는 사형집행인. 얼굴에는 붉은색 흉터가 있고 표정이 우락부락하지만, 이 사내 역시 가타리나만큼이나 멋진 의상을 입고 있다. 끈으로 바지에 연결된 흰 가죽 장화와 무릎 부분의 가늘게 째진 장식은 당시 최고급 유행이었다. 그가 착용한 줄무늬는 그 연원을 알 수 없지만 주로 소외된 자들 곧 사형집행인이나 나병환자, 창녀, 마술사, 광대 등 사회적으로 신분이 천한 존재들이 착용한 것으로, 이자의 천한 지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자가 가타리나의 목을 단칼에 벨 수 있도록 그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곧추세우고 있다.
이런 비천한 인간이 고귀한 신분의 여인에게, 그것도 우악스럽게 손을 댄다는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가혹한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수난은 세속에서는 고난의 과정이지만, 결국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 것으로 궁극적인 기쁨을 향한 여정이 아닌가?
망나니의 뒤편으로 들쭉날쭉한 산허리에 지어진 성들이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이 성들은 조형적으로 배경에 생기를 주는, 장식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형상이 장엄하고 단호해 보이기보다는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몰락 직전의 양상을 띤다. 아마도 문화적으로는 이런 성채가 중세의 상징인 만큼 중세의 종말을 뜻하며, 종교적으로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한 로마 제국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스도교 탄압의 막바지에서 로마가 망나니에게 곧바로 가타리나의 사형을 명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타리나의 사형을 명한 로마의 황제 막센티우스가 312년 물에 빠져 죽자, 그의 뒤를 이어 등극한 황제가 로마 제국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교 공인이라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 가타리나의 앞선 죽음이 어둠과 혼돈 속에서 광명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연 것은 아닐까?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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