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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성 엘리지오 / 1449년, 목판에 유채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29.
성 엘리지오 / 1449년, 목판에 유채

 

성 엘리지오 / 1449년, 목판에 유채

99x85cm,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588년 프랑스 느와용에서 태어난 성 엘리지오. 대장장이이자 금 세공인이었던 그는, 정직하고 뛰어난 재주로 왕립 화폐국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느와용의 주교로서 신앙심을 잃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사람이다. 또한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성녀 고데베르타가 강제로 결혼하게 되자 금반지를 만들어 그녀를 구제하여 자신의 소명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런 연유로 그는 대장장이들과 금 세공인, 환전상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어느 날 편지를 박으려 하자 몸부림치는 야생마의 말발굽을 간단히 자른 뒤 편자를 박고는 제자리로 돌려놓았는데, 그 말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하게 뛰놀았다고 한다. 이처럼 성 엘리지오는 장인이었으나 정직함과 신앙심으로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다고베르트 때 궁전 고위직에 올랐으며, 하느님의 권능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성 엘리지오’를 그린 페트루스 크리스투스(Petrus Christus, 1420?-1472년)는 조용하고 절제된 세련미를 구사한 네덜란드의 화가로, 금 세공인의 도제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그가 살던 벨기에 브뤼주의 여건과 이곳을 통치하던 부르고뉴의 필리프 공작의 습관 등 당시 시대상과 밀접히 관련되었다.

 

브뤼주는 오늘날과는 달리 15세기에는 북유럽 무역의 중심지였다. 북에서는 목재와 곡물, 모피 등을, 남에서는 포도주와 양탄자, 비단과 향신료를 들여왔으며, 연일 수십 척의 배가 이 물건들을 싣고 지중해나 영국, 한자동맹국으로 서둘러 출항하였다. 이곳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필리프 공작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귀중품에 관심을 갖는다.

 

부가 권력유지의 수단이라 했던가? 전쟁과 여행으로 이동이 잦은 지배계층에게 옮기기 쉬운 귀중품은 매우 중요하였는데, 이 요구에 충족되는 것이 보석류였다. 이런 경제적 · 정치적 이유로 브뤼주는 금 세공품을 비롯해 은행과 환전업 등 금융업이 발달한다.

 

당시는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았던 터라 물건의 무게를 재는 일이 아주 중요했으니, 그것은 신뢰 곧 올바름과 정직의 미덕을 드러내는 것이다. 크리스투스는 하느님의 섭리를 통해 미덕의 의미를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림에는 전면에 세 명의 인물과 거울 속에 두 명의 인물이 나온다. 주앙의 저울에 손을 대고 측량하는 붉은 옷의 사람이 성 엘리지오다. 그는 측량을 하면서도 심각하고 세심하게, 저울을 보기보다는 저울에서 눈을 떼지 않는 두 고객을 향해 얼굴 전체를 화면에 드러낸다. 이는 실제 저울의 무게를 재는 것보다 재는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장치가 바로 볼록거울이다.

 

흔히 거울에 비친 상은 허상으로 거짓과 가식을 나타낸다. 엘리지오는 옆에 채광용으로, 마치 오늘날 감시용 카메라처럼 거울을 두었는데, 실제로 그 의미는 사기와 속임수에 대한 경고다. 작업실 밖에 있어 거울에 비친 자들의 세속적 욕망이 이 거울에 투영되어 있다.

 

지금 엘리지오는 손저울에 추를 쌓아가며 무게를 잰다. 이 추들은 뚜껑이 열린 둥근 보관함에 들어있다. 그리고 옆으로는 여러 개의 동전이 보이는데, 마인츠의 동전과 영국의 에인절, 필리프 공작이 만든 라이터 동전이 보인다. 그리고 옆으로는 전통 혼례용 허리띠가 놓여있다. 이들 동전은 성 엘리지오가 왕립 화폐국장을 맡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성 엘리지오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은 것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궁정의 관료임을 알려준다. 신랑은 묵직한 금목걸이를 걸었으며 멋지게 접은 모자에 브로치를 달았다.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직조된 석류 문양의 금란 옷을 입고 그녀의 금빛 모자는 진주로 장식되어 있다. 성 엘리지오의 저울에 결혼반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유층 약혼자들이 예물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측량을 하는 이의 정직함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물을 장만하러 온 약혼자들의 고결하고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지금 성 엘리지오가 저울에 다는 것은 반지라기보다는 반지로 상징하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일 것이다. 그렇기에 성 엘리지오는 부릅뜬 눈으로 고객을 응시하며 이들한테 고결하고 정숙한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금 세공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각별한 지위를 부여하였다. 1960년에 출간된 희곡 “금 세공인의 상점”에서, 금 세공인을 아주 비상한 능력을 지니고 미지의 것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신비한 결혼반지 제작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 희곡에서 금 세공인은 “내 저울은 금속의 무게를 재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몇몇 특별한 인간을 측정한다.”라고 말한다. 이 희곡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작가는 카롤 보이티야, 훗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작업실의 선반 위에 놓인 값비싼 물건들은 이중적 의도 곧 보석인 동시에 불행을 피하고자 하는 용도로 차용되었다. 물론 보편적으로 보석과 금은 장수와 권력의 상징이다. 니벨룽겐의 신화가 보여주듯, 누가 되었든 한 민족의 권력을 쥐는 사람은 민족의 금으로 된 보물을 소유해야 비로소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그림 속 선반에 놓인 물건 가운데 벽에 걸린 삼각형 모양의 보자. 이것은 독이 들어있는지 검사하는 용도의 상어이빨 화석이다. 그리고 커튼에 반쯤 가린 술잔은 야자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이 이국 과일은 해독제로 알려졌다. 중풍 예방을 위한 나뭇가지 모양의 산호, 염증을 막아주는 루비, 종기를 치료해 주는 사파이어, 브로치, 산호와 호박으로 만든 묵주, 금 벨트 장식, 여러 가지 진주와 반지 등 그림에는 온갖 보석이 있다. 특히 금과 유리로 된 용기는 성스러운 유골이나 성체를 담으려는 것이다. 벽에 기대있는 두 개의 긴 사각형은 금은의 순도를 재는 시금석이다.

 

이런 것이 유행한 이유는 왕가의 인물들이 늘 독살될 위험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필리프의 아버지와 그의 삼촌은 암살당했으며, 그의 모든 가족이 독살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그의 후계자인 찰스 역시 1461년에 독살 음모에 휘말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이들 물건은 종교적이며 마술적,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바로 정직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 곧 악덕의 치유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아래를 보면 크리스투스가 라틴어로 남긴 문구와 사인이 있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가 나를 1449년에 만들었다.”라는 뜻인데, 문구 옆에 있는 심장 모양의 표시가 의미심장하다. 이 표식은 브뤼주에서 금 세공인들이 쓰는 ‘거장의 표식’이다. 화가 크리스투스는 화가이자 금 세공인으로 자신의 수호성인을 모델로 하여 정직한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올바름의 미덕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