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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성 제오르지오와 용 / 비토르 카르파초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29.
성 제오르지오와 용 / 비토르 카르파초

 

성 제오르지오와 용 / 비토르 카르파초

(1502-07년. 캔버스 위에 템페라, 141x361cm.

베네치아의 스쿠올라 디 산 조르조 델리 스키아보니 소장)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카르파초(1460-1525년?)는 르네상스 초기 베네치아의 화가로 이야기식의 종교화를 주로 그렸다. 그는 특히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과 풍경 이미지를 잘 그렸으며, 이런 그의 재능은 그를 베네치아의 가장 뛰어난 ‘베두타(Veduta)’ 곧 사실적인 풍경화가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 그의 후기 활동의 대표작이 ‘성 제오르지오와 용’이라는 서사화 연작이다.

 

그림을 보면, 검고 빛나는 갑옷을 입은 용맹한 기사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괴물, 성경의 레비아탄을 연상시키는 용의 목구멍에 붉은색 긴 창을 꽂아 넣는다. “공포가 서린 겹 갑옷”(욥 41,5-6)의 목구멍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 목을 뚫던 창이 부러지고, “입에서는 불길이 치솟으며 그 앞에서는 공포가 날뛰는”(욥 41,13-14), 괴물의 목에서 죽음의 피가 줄줄 흐르면서 괴물은 단말마의 고통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이 그것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은 환상일 뿐”(욥 41,1)인 이 용을 죽인 용감한 기사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자, 악을 물리치고자 하신 하느님의 전사 성 제오르지오이다. 제오르지오는 3세기 사람으로, 중부 터키의 카파도키아 출신이며 로마 군대의 기병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그 신앙과 본분을 다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던 법에 따라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한 성인이다. 그에 대해 잘 알려진 일화가 바로 무서운 용과 벌인 싸움이다.

 

그가 리비아의 시레나라는 도시에 갔을 때이다. 시레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이 호수에는 전염병을 퍼트리는 독을 가진 용이 한 마리 숨어 살고 있었다. 이 용은 도시로 기어 올라와 그의 입김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병에 감염시켰다. 병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이 괴물에게 날마다 양 두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 점차 양의 수가 바닥나자, 양 한 마리에 사람을 한 명 바치기로 하였다. 어느 날 추첨에서 왕의 외동딸이 이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어느 날 밤, 용이 사는 호숫가에 홀로 남겨졌다.

 

이 순간,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제오르지오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십자가로 무장하고 운명을 하느님께 의탁한 채, 그녀에게 다가서는 용에게 거센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가 휘두른 치명적인 일격에 괴물은 쓰러지고 만다. 이 ‘그리스도교 전사’는 하느님의 뜻대로 선을 위해 악에 대항하고, 밝음을 위해 어둠과 싸웠으며, 믿음과 신앙을 위해 사탄과 겨루어 승리한 영웅이다.

 

이 영웅이 용과 싸움을 벌인 광장 한복판에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자빠져 있다. 이미 유골로 변한 모습과 머리만 남고 다 먹힌 자, 팔이나 다리 등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사람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것이 이 괴물이 얼마나 잔혹한지, 사탄의 무리가 행하는 죄악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입증한다. 바로 이 희생자들 위에서 이 성스런 싸움이 벌어진 것은, 신앙의 꽃이 세속의 희생과 고통 위에서 핀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화가가 그린 이 괴물은 실제 뱀의 꼬리에 새의 발톱, 박쥐의 날개, 늑대의 머리를 조합한 것인데, 이 기괴한 형상이 악의 화신으로 우리 눈앞에 현현한 사탄 자체이다.

 

그림 속에는 바다와 연결된 엄청나게 큰 물이 있다. 이 물이 괴물의 은신처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그것이 일어서면 영웅들도 무서워하고 경악하여 넋을 잃는다.”(욥41,17)고, 또 “해심을 가마솥처럼 끓게 하고 바다를 고약 끓이는 냄비같이 만들며 빛나는 길을 뒤로 남기며 나아가니 큰 물이 백발처럼 여겨진다.”(욥 41,23-24)고 성경은 레비아탄을 묘사한다.

 

성 제오르지오의 뒤에 서있는 사람이 제물로 바쳐진 공주이다. 이 매혹적인 여인은 머리를 얌전하게 치장하고 모자를 쓰고 있으며, 소매 없는 외투를 입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이런 공주의 모습이 기도와 신앙의 힘을 상징하는 영원한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를 닮지 않았는가?

 

성 제오르지오는 이 싸움에 앞서 공주에게 “가여운 여인이여! 겁먹지 말고, 지금 당장 너의 장식리본을 저 괴물을 향해 던져라.” 하였다. 그렇게 하자 이 끔찍한 괴물이 갑자기 강아지처럼 온순해지며 공주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닌가? 그 괴물은 실제 그렇게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꼼짝 못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런 공주의 기도와 두려움 없는 믿음은 오늘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신앙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카르파초가 제오르지오를 통해 표현한 이런 신앙의 증거는 실상 이 시대에 베네치아가 처한 대내외의 위급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는 해마다 수백 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태풍과 홍수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염원이다. 다른 하나는 당시 베네치아를 떨게 만든 전염병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시기에 돈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독이 있는 입김’ 곧 그 입김이 닿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용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당시 베네치아를 위협했던 터키군의 존재였다.

 

터키의 오스만 제국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이래 왕성한 세를 과시하며 베네치아를 공격하였다. 결국 오스만 제국이 베네치아의 몇몇 기항지를 점령하면서 베네치아는 해상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1499년에는 이 도시가 전쟁비용을 충당하려고 특별세금을 부과했으며, 도시민들의 봉급을 삭감하는 고육지책을 펴게 된다. 오스만의 침입에서 그리스도교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베네치아가 의도한 유럽동맹도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교황이 약하고 위기에 처한 베네치아를 공격하고자 뭉쳤다. 이렇게 해서 베네치아는 육상에서는 유럽의 절반 세력과 싸워야 했고, 해상에서는 터키 군대를 맞아야 하는 사면초가에 직면하였다. 이런 내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베네치아 사람들은 수호성인인 제오르지오에게 의탁하였다.

 

카르파초가 그린 이 기사가 바로 베네치아를 위기에서 구원할 영웅이다. 그 영웅은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이 위대한 순간, 핏빛 마구로 장식되었으며 멋진 갈색 말을 탄 노련하고 용감한 마상시합 선수 같다. 이 활기찬 모습은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활약하는 강인한 제오르지오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며, 더욱이 베네치아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용맹한 수호성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것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비록 적대관계지만 터키의 침입은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동방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나보다. 이전의 동방은 폐쇄적이었고 너무 멀었는데, 터키의 침입이 그 심리적이며 물리적인 거리감을 없애준 것이다. 이 시기에 즈음해서 화가들은 이국적 빌딩이나 풍경, 카프탄(터키인의 소매가 긴 옷), 터번 등을 즐겨 그리는 등 동방의 문화를 작품에 도입하게 되는데, 그 이국적 이미지들이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건물과 종탑, 키가 큰 대추야자나무와 오벨리스크 탑 등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다.

 

카르파초는 배경 공간을 싸움을 구경하며 성인의 승리를 환호하는 군중들로 장식하였다. 멋진 건물 테라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침착하게 싸움을 지켜보고 있으며, 성급한 사람들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성문에 나와 있다. 성 제오르지오의 용감한 자태와 더불어 이 사람들이 보이는 들뜨지 않고 질서정연하며 조화로운 모습은 위기에 굴복하지 않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와 함께, 베네치아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국가를 중심으로 결속했다는 사실, 곧 당당하고 이상적인 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