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이 있는 풍경 - 브뢰헬
1557, 패널에 유채, 74 x 102cm, 팀켄미술관, 샌디에고
[말씀이 있는 그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el de Oudere, 1525경-1569)은 네덜란드에서 풍경화가 정립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농민들의 생활상을 재치 있게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다. 농부를 다룬 주제에는 도덕적인 알레고리를 유쾌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 화가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습관처럼 자신의 작품에 서명과 연대를 써넣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 대해 변화나 발전을 추적할 수 있다.
“브뢰헬, 1557”이라고 기재된 <씨 뿌리는 사람이 있는 풍경> 작품은 마태오 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단지 풍경화처럼 보인다. 실제로 브뢰헬의 작품 세계를 보면, 그는 풍경화와 인물이 들어가는 주제에 이중적 관심을 나타낸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풍경이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배경을 이루는 풍경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농부와 어부 이야기 등 알아듣기 쉽게 일상에서 가져온 예로 많은 비유를 말씀하신다. 화면 오른쪽 멀리 해안가에는 배 한 척과 군중이 그려져 있다. 예수님께서 군중이 많아 배에 올라앉으시고 물가에 있는 그들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이 비유의 세부 사항을 확대해 놓은 것처럼 화면의 가장 앞부분에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혼자 열심히 씨를 뿌리는 농부와 해안에서 많은 군중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한편, 멀리 왼쪽 해안가 근처에 두 인물은 무엇인가를 수확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의 화면 구성은 근경, 중경, 원경으로 나누어 따뜻한 갈색 톤부터 녹색 톤, 멀리 차가운 청색 톤을 사용함으로써 공기원근법(색의 농담이나 색조, 명암 등의 변화로 공간의 깊이나 거리를 나타내는 기법)을 보여주며 성경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그림의 핵심적인 인물, ‘씨 뿌리는 사람’은 비록 한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화면 왼쪽 아래 귀퉁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가는 씨를 뿌리는 동작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뿌린 씨가 길, 돌, 가시덤불 속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질 때에 관한 비유를 들고 있다. 브뢰헬의 작품에서도 이 네 부류를 묘사하고 있다. 화면에서 농부와 뒤쪽에 집 사이에는 두 마리 새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 먹고 있다. 열심히 농부가 씨를 뿌렸지만, 길가에 뿌려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마태 13,4)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화면 가장 앞쪽 중앙에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이 묘사돼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자라지 못하고 잘려져 시들어버린 나무가 있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마태 13,5-6)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기쁘게 받지만, 믿음의 뿌리가 없어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화면 왼쪽 귀퉁이에는 무성한 가시덤불이 보이는데, 이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를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세상 걱정과 유혹 때문에 성숙한 신앙생활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에 농부의 어깨 뒤로 멀리 보이는 집 뒤로는 좋은 땅이 보인다. 비옥한 토지에서 잘 자란 것들을 수확하고 있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 13,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주님, 저희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2014년 7월 13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