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천상모후의 왕관을 받으시는 마리아 - 프라 안젤리코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2.

 

[장긍선 신부가 들려주는 축일 이야기]

천상모후의 왕관을 받으시는 마리아 - 프라 안젤리코

 

 

상부에는 성모님과 예수님이 구름위에 앉아 계시며 예수님은 천상모후의 관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씌워주고 있다. 성모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포개어 겸손된 모습으로 왕관을 받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다.

 

그 아래에는 6명의 성인들이 무릎을 꿇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두 손을 들고 찬양을 드리고 있다. 왼쪽부터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베네딕도, 성 도미니코, 성 프란치스코, 성 베드로 수사 순교자와 성 마르코가 그려져 있다.

 

피렌체의 성 마르코 수도원은 이미 12세기에 세워졌었지만, 1437년에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일 베키오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수리해 피렌체의 엘레강스한 르네상스 양식의 수도원이 되었다 그 후 1580년에 쟘 볼로냐에 의해, 그리고 1678년에는 실바니에 의해 다시 손질되었다. 그러나 뭐라 해도 최대의 볼거리는 수도원 그 안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이 수도원에 머물며 많은 작품을 남겼기에 이 수도원은 현재도 피렌체 최대의 관광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1449년에 성 마르코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어, 3년간 그 임무를 맡았으며, 1층과 2층 수도원 구석구석에 자신의 작품을 프레스코화로 남겼다. 특히 2층 수도자들의 개인 방마다 한 점씩의 프레스코화를 그려 놓았는데 이 작품들은 감정적 표현 억제와 차분하고 절제된 색을 사용하여 그 방들을 사용하는 수사들의 금욕적, 명상적 이미지를 만들고 잇다.

 

 

6명의 대표적인 수도회 창시자 함께 그려

 

오늘 소개하는 ‘천상모후의 왕관을 받으시는 마리아’는 그 중 9방 창문 옆 벽면에 그려진 것으로 서방 가톨릭의 대표적인 수도회 창시자들이 모두 함께 그려져 있다. 이 수도회의 창시자이자 영적 아버지인 성 도미니코 성인과 이 수도원의 수호자 성 마르코를 배치하고, 이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들에게 귀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던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선배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순교자 성 베드로 수사를 그렸고, 서방 수도회의 아버지라 불리며 체계적인 수도회의 기틀을 세우고 규칙서를 만든 성 베네딕도, 그리고 수도자의 가장 기본적인 삶, 즉 청빈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성 프란치스코를 묘사했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니코는 하느님의 분노로 위협받는 죄 많은 세상이 성모님의 중재로 구원받는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로 두 사람을 지적했는데 한 사람은 도미니코 자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 다음날 교회에서 도미니코는 꿈속의 그 낯선 남자가 누더기를 입은 거지 차림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거지에게로 가서 그를 껴안고 환영하면서 “당신은 나의 친구이며, 나와 동행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결합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우리를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거지는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성 도미니코는 가난하고 겸손한 순회 설교자로 살며 신학적 차원의 청빈을 실천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물질적 부를 가진 이들 앞에 나서서 그리스도의 가난을 설파했다면 성 도미니코는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 자체로써 가난의 복음을 선포했다.

 

 

성 도미니코 묵주기도 널리 전파

 

그리고 성 도미니코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성 도미니코는 성모 마리아처럼 오로지 구세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삶과 성덕과 활동의 목표를 걸었다. 오늘날 묵주기도가 활발히 보급된 것도 도미니코회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성 도미니코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간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1210년에 그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로사리오를 주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널리 전파하도록 지시하였다.

 

묵주기도 형식은 그때까지 이미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전해져왔는데, 성 도미니코(1170~1221)에 의해 체계화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150번의 성모송을 연속적으로 바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묵상하는 것이 ‘도미니코 묵주기도’ 이다. 성 도미니코는 당시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하자 각 지방을 순회하며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했다. 이에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고 그 결과 이단 세력은 점차 축소됐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의 환희에 대한 묵상을 ‘묵주기도’ 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도미니코 수도회 알랑 드 라 로슈(Alan de la Roche) 수사는 1464년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강생과 수난과 부활에 따른 환희, 고통, 영광 등 세 가지로 나눴다. 이 기도가 널리 퍼져 15단 형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는데, 정확히 오늘날과 같은 묵주의 기도는 교황 비오 5세가 1569년에 선포하였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0월호, 장긍선 예로니모(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