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긍선 신부가 들려주는 축일 이야기]
예수님의 성탄 - 프라 안젤리코
이 성화는 휴대용 제단화 뒤쪽 장식의 일부로 제작되었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 예수님의 성탄 성화에서 특이한 구도를 보여준다. 아홉 명의 푸른 옷 천사들이 마구간 지붕 위에서 둥글게 돌며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고, 아기 예수는 구유 없이 짚이 깔린 땅바닥에 누워있는 형상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어머니 마리아와,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경의를 표하고 있는 성 요셉을 그렸다. 그리고 이들 뒤로 화면의 중앙부분에는 무릎을 꿇은 황소와 나귀를 묘사했다.
마구간 속은 점차 어두워지며 둥근 천장이 안쪽으로 점차 작아지는 초기 원근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선 원근법을 회화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는 르네상스 원근법의 대가인 마사치오인데 그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삼위일체 프레스코(1427-38)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물체가 뒤로 물러갈수록 수학적 법칙에 의해서 그 크기가 작아진다는 사실을 르네상스 회화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프라 안젤리코도 한쪽에서만 빛이 들어오는 방식의 단일한 빛의 구사, 원근법의 사용으로 앞쪽 천정이 뒤쪽으로 갈수록 공간이 작아지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미술사에 혁신을 가져온 천재 화가였다.
소와 나귀도 제 주인을 알아보건만...
그리고 이 성화에서처럼 아기 예수를 구유가 아닌 땅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은 중세 회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소와 나귀는 이 성탄의 장소가 마구간임을 나타내주고 있음과 동시에 이사야서 1장 3절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말 못하는 짐승인 소도 나귀도 먹이를 주는 제 주인을 알아보는데 그보다 더 귀한 생명의 선물을 주신 주님이 오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한 인간들의 우매함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수많은 예언자들이 말해왔던, 그리고 온갖 시련에도 희망을 갖고 기다려왔던 바로 그 분이 눈앞에 오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인간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인간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이는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뚜르의 성 마르티노는 추운 겨울 성문을 지나다 헐벗고 추위에 떠는 걸인에게 자신의 망토를 반으로 잘라 덮어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주님께서는 그 반쪽의 망토를 걸치고 나타나 그의 선행을 칭찬하셨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실 수 있다. 아니 이미 우리 가운데에 계신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있는 이들조차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분의 참된 모습을 스스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이기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의 주님이 그분의 참된 모습으로 착각하고, 자신만의 주님, 자신의 고민만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분 등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한 오늘날 그분이 우리 가운데 다시 오셔도 우리는 결국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다.
모든 이를 위해 오신 예수님
해마다 연말이면 입시, 입사, 승진 등의 시기가 온다, 그러면 많은 이들이 그동안 찾지 않던 주님을 갑자기 찾게 되고, 또 그 결과가 자신의 뜻과 같지 않으면 순간 주님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성탄이면 누구의 생일인지는 이미 오래전에 망각되고 선물을 받는 날, 먹고 즐기는 날로 바뀌고 말았다. 어린아이들도 선물을 받기 위해 이때에만 반짝 선행에 몰입하는 시기가 되어 버렸다. 자신들의 생일을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대단히 섭섭해 하면서도 성탄의 참 주인이신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다.
오늘 소개하는 성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있는 이와 없는 이, 당신을 아는 이나 모르는 이를 막론하고 모든 이를 위하여 오셨음을 잊지 말고 올 성탄부터는 내가 무슨 선물을 받고자하기 보다 예수님께 드릴 성탄선물을 준비하고 드리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의 마음을 비우고 그분이 우리 가운데 어떠한 모습으로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2월호, 장긍선 예로니모(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