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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5.

 

 

 

[성모 발현과 성인 이야기]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

1488-89. 뮌헨  알테 피나코테카 미술관

 

 

가톨릭교회에는 초기 교회 때부터 많은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있어왔다. 그 중 성모님을 지극히 사랑했고, 또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성인들이 많이 있다. 올해는 이 성인들 중 일부를 성화와 함께 소개 하고자 한다.

 

프랑스의 성 베르나르도는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드 영주의 딸 알레(Aleth)의 아들로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러 스물두 살 때인 1112년 4월 자신의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시토회(1098년에 창립)에 들어갔다. 1115년에 성인은 성 스테파누스 하딩 원장의 분부대로 클레르보라는 계곡에 가서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엄격한 규율의 준수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초인적인 자기 부정과 자기 수양으로 단련하며 일정기간 은둔 생활을 한 후,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움에 힘입어 두려움을 모르며 힘이 넘쳐나는 실천적인 대수도원장이 되었고, 68개 시토 수도원을 새로이 설립하였으며, 훌륭한 영적 지도자요, 교회의 쇄신에 앞장선 이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성모님은 천사들과 성인을 대동하시고 그에게 나타나

 

이렇게 성인은 학덕과 지덕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한 분이 되어 여러 나라의 통치자와 교황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1145년에는 전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독에 파견하여 알비파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였다. 성 베르나르도는 엄격한 수계생활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많은 책을 저술하여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였는데 이는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또한 베르나르도의 성모님 공경도 대단히 유명하여, 매닝 추기경은 “교회의 초기 천 년 동안 하느님의 어머니를 베르나르도 만큼 열렬히 사랑하고 존경한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소개하는 성화의 모습처럼 천사들과 성인들을 대동하시고 그에게 나타나셨다.

 

 

꿀과 같은 혀를 가진 박사

 

베르나르도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려거든 먼저 그것을 마리아 손에 맡기십시오. 은혜를 구하려 하는 이는 마리아를 통하여 구하십시오. 은혜를 바라거나 구할 때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여 탄원하며 중재하여 주시기를 원한다면 확실히 들어주신다고 확신하십시오. 무언가 바라는 일이 있다면 성모님께 청하십시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주님께 전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러한 어머니의 부탁을 꼭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가나 혼인잔치 때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들이셨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성모님의 간구를 결코 거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 자체이신 구세주를 인류에게 주신 하느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성모 마리아의 청으로 많은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날 신자들이 자주 바치는 다음의 기도는 성 베르나르도가 쓴 몇 개의 시구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생각 하소서, 성모님

    생각 하소서,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 마리아여,

    어머니 슬하에 달려들어

    도움을 애원하고 전구를 청하고도

    버림받았다 함을

    일찍이 듣지 못하였나이다.

    우리도 굳게 신뢰하는 마음으로

    어머니 슬하에 달려들어

    동정녀 중의 동정녀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당신 앞에 죄인으로 눈물을 흘리오니,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니시여,

    우리의 기도를 못 들은 체 마옵시고,

    인자로이 들어주소서 .  

    아멘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성인은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는 이단자들을 굴복시킨 달변가로 유명하여 ‘꿀과 같은 혀를 가진 박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로인해 성 베르나르도를 상징하는 문장에는 꿀벌 통이 그려지고 그로인해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 받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월호, 장긍선 예로니모(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