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긍선 신부가 들려주는 축일 이야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1430-1432, 나무판에 템페라와 금, 액자포함 277cm×280cm,
산 마르코 미술관, 피렌체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화려한 금색 테두리장식에도 여러 장면이 함께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상부의 뾰족한 세 부분에는 왼쪽부터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로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며(요한 20, 17), 가운데 화면에는 병사들이 잠을 자고 있는 가운데 돌무덤 위로 예수님이 부활하고 계신다. 그리고 오른쪽 세 번째 화면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무덤에 갔다가 덮개돌이 젖혀진 빈 무덤을 목격하고 흰 옷의 천사의 말을 듣고 있다.(마르 16, 1-8)
즉 중앙의 주 화면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그 시신이 내려지는 모습이 그려져있으나 그 위로 이렇게 세 화면에 나누어 주님의 부활을 묘사함으로써 초기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져 우리에게 절망과 슬픔으로부터 기쁨과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후광에는 CORONA GLORIE 즉 "영광의 왕관"이라고 쓰여 있다. 즉 그분이 쓰셨던 가시관과 수난은 수치스러움과 고통이 아니라 인류구원을 위한 영광과 승리의 월계관이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금도 동방교회의 십자고상들에는 우리가 보통 보는 INRI(이스라엘, 나자렛 사람, 왕, 유대인의) 라는 글과 함께 ‘영광의 왕’이라는 글도 많이 쓰인다.
그분이 쓰신 가시관은 승리의 월계관
예수님은 여러 제자에 의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있는데, 화면 가운데 검은 모자를 쓴 이가 바로 이 성화를 그린 프라 안젤리코 자신의 초상화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화면 왼쪽 하단에는 짙은 남청색의 수건을 쓴 성모 마리아가 땅에 주저앉아 두 손을 모으고 비통해 하고 계시며, 그 앞으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릎을 꿇고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다. 이 인물들 뒤로 보이는 왼쪽의 배경은 당시 피렌체와 토스카나 지방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오른쪽에도 15세기 이탈리아의 복식을 한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데 그 중 푸른 옷에 붉은 모자를 쓴 사람이 오른손에는 가시관을 그리고 왼손에는 예수님을 못 박았던 못들을 들어 뒤를 돌아보며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성화는 당시 피렌체 최고의 부유한 인물 중 하나였던 팔라 스트로치(Palla Strozzi)의 주문에 의해 제작 되어 스트로치 가문의 교회인 삼위일체 성당(Santa Trinita)에 놓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로렌초 모나코(Lorenzo Monaco 수도사 로렌초'란 뜻의 이탈리아어-본명은 Piero di Giovanni. 1370/71경 ~1425경. 카말돌리 수도회 수사)가 주문을 받아 고딕 양식 특유의 형태로 틀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사망하자 프라 안젤리코가 이를 이어받아 완성했다.
구원의 장소는 생활하는 이곳임을 보여줘
오른쪽 앞에 무릎을 꿇은 인물은 14세기말에 사망한 스트로치가의 선조 알레시오(Alessio)이다. 알렉시오는 가슴에 댄 손으로 참회를, 내민 손으로 이 성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명상에로 권유하고 있다. 왼쪽 끝에 등을 보이고 선 여자의 모습 역시 성화를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성화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써 안젤리코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현장과 그 위에 부활을 그림과 함께, 구원이 펼쳐질 장소가 현실의 장소와 거리가 먼 곳이 아니라 이 성화를 바라보는 이들이 생활하는 바로 이곳에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팔라 스트로치는 이 그림이 걸린 성당에 묻히고 싶어 했지만 제단화가 설치된 지 2년도 안되어, 유배지에서 되돌아온 사업상의 라이벌이자 정적인 코지모 데 메디치(Cosimo de’Medici)에 의해 반역 혐의로 추방되어 다시는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
코지모는 1433년에 전쟁 기금 횡령과 정부 전복 기도 혐의로 도시에서 추방되었다가 1444년의 반란으로 도시에 복귀했다. 코지모는 피렌체로 돌아오자마자 보복으로 스트로치 가문을 제거하고 도시 최고의 부와 권력을 차지하게 되어 이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차지가 되어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게 되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4월호, 장긍선 예로니모(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