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발현과 성인 이야기]
성 로코와 성 모자(母子)
자크 루이 다비드, 성모에게 역병 환자들의 치료를 간구하는 성 로코,
1780. 마르세이유 미술관
성 로코(Rochus)는 14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은수자로 외과의사, 약사, 순례자, 여행자, 병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죄수들의 수호성인이다.
로코는 1295년 프랑스의 몽펠리에(Montpellier)의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그 지방의 고관이었는데, 자녀가 없는 것이 늘 아쉬워 하느님께 계속된 기도를 드려 로코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로코가 20세 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하며 그에게 남겨질 막대한 유산을 로코 자신이 아닌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유언을 남겼고, 곧이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자신에게 남겨진 모든 것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그 당시 이탈리아는 사방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페스트의 전염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로코는 병자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역시 피아첸차(Piacenza)에서 전염병에 감염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도 그가 병에 걸리자 무자비하게 마을 밖으로 쫒아냈다. 작은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그 근처 숲으로 들어간 로코는 작은 샘물을 발견하고 그 물을 마셨다. 주님께서는 이 샘물을 통해 그에게 치유의 선물을 주셔서 로코는 병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그때 그 숲 인근에는 한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기르는 개 중 한 마리가 새로 구운 빵을 물고 숲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주인은 이상히 여겨 그 개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그 개는 숲속에 기진하여 누워있는 로코에게 빵을 물어다 주고 그의 상처를 핥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에 감화를 받은 그 주인은 로코를 잘 보살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경건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로코에게는 치유의 은사가 더욱 풍성하게 드러나 많은 병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순례자 복장에 전염병 상처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묘사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더구나 그의 고향은 이웃과 전쟁 중이었기에 로코를 순례자로 변장한 스파이로 보고 체포하여 5년 동안이나 투옥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묵묵히 수감생활을 받아들이다 1327년 8월16일 32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죽었는데 나중에야 그가 전직 고관의 아들이며 현 장관의 조카임 판명되었다. 축일은 그의 사망일인 8월16일 이며, 로코는 무엇보다도 치유의 은사를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했고 또 그렇게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는 로코(Rocco), 에스파냐에서는 로케(Roque)로 불린다.
성 로코를 묘사한 성화나 성상에서는 조개껍질을 매단 지팡이를 들고 있거나 작은 조개껍질을 가슴에 달고 있는 순례자 복장에, 옷의 한 부분이 들어 올려져 있어 그의 허벅지의 전염병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그 곁에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외면할 때 빵을 물고와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개 한 마리를 묘사한다.
오늘 소개하는 성화에서도 역시 성 로코는 지팡이를 들고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 화면 아래쪽의 죽어가는 병자들을 위해 성모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아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마주보며 성모님의 뺨을 만지며 그의 기도를 듣고 치유의 도움을 허락하시는 모습을 보이고 계시며 성모님은 로코에게 손을 향해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심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의 아래쪽에는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 병자들과 로코 사이에 개의 머리 부분이 그려져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7월호, 장긍선 예로니모(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