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세례자의 설교 - 기를란다요
1486-90, 프레스코화,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렌체
[말씀이 있는 그림] 실천하는 믿음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1494)로 불리는 도메니코 디 토마소 쿠라디 디 도포 비고르디는 피렌체의 오래되고 전통을 지닌 장인, 상인, 예술가 집안의 가문에서 성장한 화가로 프레스코와 초상화를 잘 그렸다. 초기 작품은 플랑드르 화가들처럼 극도로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1481~82년 로마에 머무는 동안 고대 유물에 관한 관심으로 그의 작품 속에서 고대 유물이 자세히 묘사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기를란다요의 고전에 관한 관심과 사실성은 1485~90년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토르나부오니 경당’에 동정 마리아와 요한 세례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연작 그 가운데 <요한 세례자의 설교> 장면이다.
요한 세례자의 설교 장면에서 요한은 그림 중앙의 바위 위에 서 있다. 그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군중들이 둘러싸여 있다.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한은 유다 사막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30세가 됐을 때부터 요르단 강가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설교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전통적으로 요한은 넝마 같은 짐승 가죽옷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 모양에 상징물로는 갈대로 만들어진 십자가나 어린 양이 그려진다. 요한은 주님께 회개하는 삶으로 세속의 옷을 벗고 고행의 상징인 짐승 가죽옷을 입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요한은 짐승 가죽옷을 걸치고 있고 오른 손가락으로 왼손에 쥐고 있는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 왼쪽 위에서는 예수님께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경청하고 있다. 군중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하다.
요한의 왼쪽에는 여자 그룹이, 오른쪽에는 남자 그룹이 모여 있다. 군중은 수도 많았고, 그 출신 신분도 제각기이다. 당시 사회 주류이던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요한은 군중에게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주님의 길을 닦으라고 외치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의로운 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가에 있다. 오른쪽에 앉아있는 유다 지도자들은 요한이 전하는 의로운 길을 믿으려하지 않는 듯, 못마땅한 표정과 동작을 취하고 있다. 이들이 요한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배척을 뜻한다. 요한의 발밑에 있는 아기는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마치, 요한의 메시지를 배척하는 지도자들의 행동은 곧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구성상으로도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대각선으로 연결된 지점에 있고,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요한이 서 있다. 반면,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모두 나아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 이들 가운데는 세리와 창녀들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를 믿고 회개하였다. 비록 죄인으로 불렸던 세리와 창녀들이지만, 이들은 요한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 예언자라고 확신하면서 그의 가르침과 일치하여 살아가려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실천적 믿음이,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유다 지도자들보다 먼저 이들을 생명의 길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야고 2,18)
[2014년 9월 28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