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준 교수의 성화이야기] 마르크 샤갈의 ‘인간의 창조’
(The Creation of Man)
1956~1958년, 캔버스 위에 유화, 300x200cm, 샤갈미술관, 니스, 프랑스
서양미술사상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호가 의미하듯, 화사하면서도 감미롭고 부드러운 색채로 사랑에 젖은 연인들의 감정을 그린 화가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다.
그의 따스한 화필은 성서이미지의 표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그의‘인간의 창조’는 샤갈 특유의 아름다운 색의 조화는 물론이거니와 하느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지를 샤갈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그림 아래에는 인간을 안고 있는 천사가 보이는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을 천사가 지상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천사는 순박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자기 임무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묻는 것 같다. 무엇을 물었을까?
그의 시선을 따라 그림의 위로 올라가면 복잡한 형상들이 다채로운 색채 속에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하얀색의 세상인 오른쪽에는 갖가지 색깔의 회오리가 돌아가고, 그 주변에는 많은 인물들이 섞여 있다. 노란색의 세계인 왼쪽도 환상의 세계로 표현된 것은 마찬가지이다. 오른쪽 제일 윗부분에서는 천사가 인간을 등에 업고 날며,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회오리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책을 든 복음사가와 메노라 촛대를 든 제사장 아론, 토라를 든 암소, 우는 예언자 예레미야, 하프를 켜는 다윗왕의 모습이 보인다. 구약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유대인 샤갈에게 이런 형상은 하시디즘에 기초한 것으로, 천지창조의 원리와 연관된 것들이다. 가운데의 붉은 태양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빛이 생겨라”이며, 그로 인해 세상만물이 생겨났음을 다채로운 색깔의 회오리가 나타낸다.
이러한 창조의 의지를 보이신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의 지도자로 급기야 당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인간이 그림의 최상단에 위치한 것이다. 그 인간 창조의 원리는 무엇일까?
창조된 인간을 등에 업고 예수님께 경의를 표하는 천사는 인간의 창조가 예수님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바로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요, 근원이라는 것을 샤갈이 그림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예수님 뒤에 그려진 집은 샤갈의 고향인 러시아 비테브스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의 생을 본보기로 한 자기 자신을 암시한다.
물고기와 비둘기가 나는 행복한 세계, 곧 낙원이다. 구름 속에서 두 손이 나와 창조된 인간이 지상에 가서 지키고 살아야 할 십계명을 전하고 있다. 이 신비로운 창조와 계율의 원리에 천국의 사람들이 환호하고 천사는 나팔을 불며 축하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신비와 그분께서 친히 주신 계율은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이런 여정을 통해 천사가 창조된 인간을 푸른색의 지상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니 이 인간은 앞으로 닥칠 유대인의 시련도 감내해야 하며. 동시에 원초적 의무로 주어진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천사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인간에게 이런 삶의 의무를 잘 전달했는가를 하느님께 묻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하느님께 그 의무를 다시 한 번 다짐 받을까를 여쭙는 것일까?
여하튼 그 의무의 성실한 이행이 참으로 어려운 질곡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창조된 인간을 안은 천사의 왼손 아래에는 악과 죄의 상징인 뱀이 똬리 튼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참된 신앙의 꽃은 각고의 시련을 통해 더욱 강해지지 않겠는가?
악과 죄를 극복할 수 있는 참된 신앙의 길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무한한 사랑이라면, 그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인간의 삶은 결국 고독의 길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하는 관계 속에 있을 것이다. 바로 사랑의 대상은 이웃이기에 그렇다. 그 이웃을 위해 자기희생이라는 최고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최초이자 최소 단위가 바로 가정이다.
성가정의 진정한 의미가 이것 아닐까? 그래서 샤갈은 이 그림에서 자기의 이름을 적어야 할 오른쪽 하단에 자신과 아내 벨라(Bella), 딸 이다(Ida)가 함께한 성가정의 모습, 신앙 앞에 성스럽고 계율에 순종적인 참된 가정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미술사에서 샤갈만큼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던 사람도 매우 드물다는 사실에서, 샤갈이 가정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 진솔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렇듯 인간창조의 근원이 자기희생과 사랑에 있기에 그런지, 천사의 품에 안긴 인간의 모습이 정말 희생을 겸허하게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명하는 모습 그 자체로 보인다.
[평신도, 제42호(2013년 겨울), 권용준 안토니오(고려사이버대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