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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라파엘로의 ‘고기잡이 기적’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22.

 

 

 

[권용준 교수의 성화이야기] 라파엘로의 ‘고기잡이 기적’

(The Miraculous Draught of Fishes)

 

 

1515-1516년경, 캔버스 위에 고정된 종이에 목탄 드로잉과 채색, 319x399cm,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그림에는 큰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갓 잡은 물고기로 가득 찬 두 척의 배를 보니 고기잡이에 큰 성과를 거둔 모양이다. 배에는 각각 세 사람씩 타고 있는데, 오른쪽 배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물고기가 꽉 차서 올라오는 그물을 당기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왼편의 배에는 사정이 다르다. 한 사람은 고기잡이에 전혀 관심 없는 무상(無常)한 모습이고, 두 사람 역시 고기잡이와는 무관한 간절하고 애절하게 부복(俯伏)한 모습이다. 아마도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성서의 말씀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부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니 뜻밖에도 그물에 고기가 넘쳐났다는 <고기잡이 기적>을 그린 것으로,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작품이다.

 

그림 맨 왼편에 앉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분은 지금 꽉 찬 고기 때문에 가라앉을 것 같은 뱃전에 앉아 무슨 말씀을 하실까? 아마도 이제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말씀 아닐까? 그 말씀 앞에 시몬 베드로는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로 그 말씀을 거두어 달라는 애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8-11)

 

그러니 오른편의 배의 인물들은 배를 부리는 제베대오와 그물을 들어 올리는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으로, 이들도 시몬 베드로 형제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른 사람들이다.

 

그림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척의 배에 나누어 탄 6명의 인물들 외에,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아래 근경에는 두루미와 두 동강 난 가재가 놓여 있다.

 

그리고 원경 멀리에는 도시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여러 그룹을 짓고 있다. 이들 그룹은 서로에게 참다운 이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해와 용서, 사랑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외면하거나,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른바 주님을 알지 못한 채 떠도는 방황하는 운명의 자들, 즉 이방인들인 셈이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모습 자체가 불분명하고 흐리다.

 

이런 죄의 삶과 대비를 이루는 것이 배와 호수 주변의 새들을 비롯한 동물들이다. 이 동물들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창조물 아닌가? 그렇기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생명과 삶 자체가 온 누리에 있다는 것, 그렇기에 삶의 진정한 가치는 공존이며 나눔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에 죄의 길과 상반된 이미지들인 것이다. 더욱이 머리가 빨간 두루미들은 붉은 모자를 쓴 교황의 품위와 연관이 있어 교황권을 의미한다. 반면 가재는 뒤로 도망치는 걸음을 걷는다. 그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약한 신앙의 상징이다. 그러니 두루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인물들 앞에 어엿하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부르심을 받고 있는 이들이 신앙의 탑을 굳건하게 세우고 교회의 반석이 될 것임을 예증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러니 그물 속 물고기는 주님과 제자들에 의해 구원되는 인간들, 곧 신앙의 대열에 참가할 사람들일 것이다. 더불어 물고기가 ‘동정’과 ‘경건’의 상징이라는 점은 감안한다면, 구원된 이들에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삶의 덕목이 무엇인지가 뚜렷해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들을 통해 진정 구원하고자 하시는 대상은 어디에 있을까?

 

주님 상대편에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직 하느님 사랑을 알지 못하고, 구원의 은총을 접하지 못한 채 죽음의 길에 들어선 자들 말이다. 고기 잡는 천한 어부들을 부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악의 길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면서 가장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 자신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이다. 우선, 여전히 그물을 끌어올리는데 여념이 없는 제베데오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현세의 부와 이득에 아직 큰 관심을 둔 부류이다. 다음은 신앙의 길, 즉 주님 앞에서 통한의 심정으로 죄를 뉘우치는 베드로 형제의 깨달음이다. 즉, 주님의 말씀과 진리를 따르겠다는 생명의 길에 들어선 부류이다. 마지막은 가장 멀리에는 신앙을 배격한 채 생명의 길을 망각한 이방인 부류이다.

 

그러니 이 호수로 표현된 막막한 우리 인생의 행로, 그 여정에서 나의 마음에 새긴 나의 신앙의 현 주소가 과연 어디인지를 새겨 보며, 주님을 향한 믿음의 칼날을 더욱 거세게 숫돌질해 보라고 권유하는 화가의 의도가 정말 새롭게 보인다.

 

[평신도, 제44호(2014년 여름), 권용준 안토니오(고려사이버대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