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홍계숙 시인 / 바닥이 바닥을 치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22.

바닥이 바닥을 치다

홍계숙 시인

 

 

바닥의 몸부림은 둥글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다 생각될 때 바닥은 제 몸을 치고 일어선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고 기다릴 때 불기운에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

바닥은 자신을 짓누르던 수심을 둥글게 말아 수면 위로 힘껏 밀어올린다

 

물방울 속 공기는 참고 참았던

바닥의 깊숙한 호흡,

 

주전자 뚜껑이 허공의 멱살을 들었다 놓는다

궁지에 내몰려 자존심이 바닥을 칠 때 바닥도 막다른 쥐가 되어 고양이를 물어뜯는 것이다

바닥이 쿵, 쿵, 발을 구르면 둥그런 오기 한 방울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 곁에, 망설이던 작은 몸부림들도 일제히 보글보글 일어선다

 

부르르 바닥이 끓어오르고

바닥을 겪어 본 물방울들은 수면을 뚫고 뚜껑 밖으로 솟구친다

 

바닥이 바닥을 칠 때 파르르 물이 일어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홍계숙 시인

2017년 《시와 반시》 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모과의 건축학』(책나무, 2017)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