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강태승 시인 /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2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5.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2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강태승 시인

 

 

        이슬이 칼에 떨어지자 금세 끝으로 흘러 맺힌다

        소나기 아무리 퍼부어도 연잎을 적시지 못하듯이

        연꽃이 빗방울을 한입 물고 싶어도 모든 빗물은

        뼈를 읽지 못하고 하늘 높이 반론하고 마는 숙명

        또는 운명의 법열法悅을 나누고 싶지만 간직해야 하는

        칼끝에 매달린 이슬이 잠시 떨어지지 않는 자세로

        새로이 밀려드는 이슬 기다리는 듯 한 맑은 눈매,

         

        늦가을 노량 앞바다는 거꾸로 솟구쳤다 무너지자

        절벽의 단풍잎은 저절로 빨개지고만 얼굴에 내린 서리

        그 서리에 햇빛이 방문을 하자 제 결의를 풀고

        밤새 제 결심 계획 분노와 증오를 잊어버리고

        햇빛을 따라 나선 잎사귀마다 마침내 단 하나의

        순종의 표시로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숲

        칼과의 대화중에 간섭 아니라며 찾아든 이슬,

         

        내게 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거라 들여다본다

        이슬은 칼을 적시기보다 칼끝에 모였다가 가고

        또 가는 다른 물방울이 햇빛에 저승으로 반짝이는

        죽음의 각도로 비추는 칼을 붙잡고 마주하는 시간

        물방울이 단지 하나만 잘 간직하라며 무너진다

        하나만 잃지 않으면 모두를 얻을 것이라 하지만

        정작 물방울은 끝내 하나의 흔적 없는 마술사,

         

        칼을 들어 햇빛과 마주치자 거기서 물방울

        이승 보이지 않는 무게를 선물하며 웃는다

        잠시 칼에 머물다 간 이슬의 기억을 놓치지 않고

        칼은 이슬처럼 반사하는 것을 고요히 손으로 쥐니

        썰물보다 먼데로 물러나는 근심

        가깝게 다가오는

        노량의 바다는 오늘 천 갈래 만 갈래로 푸르다

        천 갈래 만 갈래는 단지 하나의 물방울로 웃으리라.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강태승 시인

충북 진천 백곡에서 출생. 2014년 계간 《문예바다》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칼의 노래』가 있음. 2016년 김만중문학상, 2017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대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