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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주희 시인 / 검은 저녁의 우화(寓話)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5.

검은 저녁의 우화(寓話)

고주희 시인

 

 

        부용 꽃차 붉게 물드는 식탁의 시간

        채집이 끝난 아이들 우르르 몰려온다

         

        한 명쯤 없어져도 눈치채지 못할

         

        의자 아래 고인 물웅덩이 지나

        손가락만 한 의혹들 음지로 퍼진다

         

        동전의 앞면에서 시작된 길

        갈림길의 뒷면에는 떠오르는 손금이 없다

        장마와 장마 사이에 좀 더 사적인 장마

         

        구간이 좁혀졌다고 더 좋아지진 않아

         

        꺾여도 계속 자라나는 열두 형제 고사리들

        앉았던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 엄마들

        비명으로 출렁였던 어제,

        들판을 집어삼켰어도 아무도 묻지 않던 죄명

         

        불덩이였던 한 사람을 가로질러

        악몽의 눈꺼풀로 모두 덮어버린

        검은 저녁의 비트

         

        곰팡내 풍기는 아이들이

        식탁 아래 두 발을 튕기는 동안

        숲속엔 잃어버린 아이의 수만큼

        번져가는 귀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고주희 시인

2015년 《시와 표현》 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