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저녁의 우화(寓話) 고주희 시인
부용 꽃차 붉게 물드는 식탁의 시간 채집이 끝난 아이들 우르르 몰려온다
한 명쯤 없어져도 눈치채지 못할
의자 아래 고인 물웅덩이 지나 손가락만 한 의혹들 음지로 퍼진다
동전의 앞면에서 시작된 길 갈림길의 뒷면에는 떠오르는 손금이 없다 장마와 장마 사이에 좀 더 사적인 장마
구간이 좁혀졌다고 더 좋아지진 않아
꺾여도 계속 자라나는 열두 형제 고사리들 앉았던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 엄마들 비명으로 출렁였던 어제, 들판을 집어삼켰어도 아무도 묻지 않던 죄명
불덩이였던 한 사람을 가로질러 악몽의 눈꺼풀로 모두 덮어버린 검은 저녁의 비트
곰팡내 풍기는 아이들이 식탁 아래 두 발을 튕기는 동안 숲속엔 잃어버린 아이의 수만큼 번져가는 귀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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