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시인 / 로스트 볼
나는 당신이 내버렸던 과실, 검게 타들어 가던 달 속의 씨앗, 단단한 씨앗에 갇혀 맴돌던 비명.
마음을 가질 새도 없이 이리저리로 몰려다니다 아득한 벼랑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을 꿈이라고 불렀지. 언제 무너질지 몰라 두근거리던 방향만을
가지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아마도 먼 나라에서 훔쳐온 것, 말라가는 뿌리를 휘저어 당신에게서 멀어질 거야. 희고 외로운 열매를 맺겠지. 오래전 함께 스쳐 지나갔던 풀숲에서
나는 거꾸로 자라는 식물, 더러운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낯선 구석이 될 거야. 우주의 품속에서 조금씩 삭아가는 이 작고 얼룩진 행성처럼
다시 멀어지고 가벼워질 수 있을까. 몸을 버리고, 꿈처럼 공중에 매달린다면
계간 『시현실』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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