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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27.

한영숙 시인 /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아웅산 묘소 옆

        17명 명단 앞에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감았다.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리고

        수류탄 파편들이

        순간 멍게 여드름으로 벌겋게 박혀있다.

         

        마하무니불탑 개금 붙이듯 싯누런 시간들은

        이국땅에서 겹겹이 수십 년,

        개금(改金)과 사이를

        해독할 수 없었던 X파일들이

        오늘, 선명한 사진 한 장으로 인화되고 있다.

         

        2015년 5월 13일 오후 6시 00분발

        오탁번 외 절기시회 전사들은

        그렇게 경건히 예를 올리고 있다.

        저리 한 몸이었던 적 있었던가.

         

        폭발물 잔해더미 속에서도

        먼 길 찾아온 객(客) 고즈넉이 반기는

        검은 꽃숭어리들,

        먄마 뙤약볕,

        꽃대마다 뉘엿뉘엿

        각혈한 핏물들이 날것으로 피어오른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한영숙 시인 / 고슴도치

 

 

장 짧은 고슴도치 종일 쳇바퀴를 돌린다.

쉬이 소화된 시간들이

속도를 내며 팽팽히 하루를 펴 바르고 있다.

 

눈멀고 귀멀고 코먼,

괄약근 느슨해진 어머니.

겹겹이 우거진 푸른 기억 저편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설익는 은행 몇 알,

하릴없이 엉거주춤 아랫도리 짓이겨져있다.

 

족지, 뒤꿈치 가리지 않고

신나게 새끼감자 어미감자 들락거린 가난 뚫린 양말들,

종일 돌리던 방차 옆에 끼고

은하수 잔인하게 검판 위에 쏟아지는 밤

청춘을 알전구에 끼워 디자인하고 바느질했을.

 

처마 밑 배곯은 새끼제비 앞 다투어 경이를 물리든,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멀고도 먼 아득한 미수(米壽)를 돌고 돌아

돋보기 언밸런스 걸치며 4개의 눈을 가지고도

구불구불 피멍든.

녹물 흐르는 초침소리 쳇바퀴에 속속들이 흘리고 있다.

 

예수의 고난주기 같았을 등가시 찔린 붉디붉은 세월.

되돌아 갈 수도 돌진할 수도 없는

스타킹 코 나가듯 자신의 Dna 쭉쭉 나간,

끊기다 만 속정신 몇 올만이

식은 밥풀 침 발라 허옇게 묻힌 채

가늘게 떨리는 눈빛으로 절룩이는 시계추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물 오른 중년의 고슴도치

세상을 달관하듯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自由를 향해 페달을 밟고 있는.

어둑새벽 덜커덩 소리에,

물레 감는 전성기 쪽진 어머니를 보는 듯 감구지회(感舊之懷) 울컥 가슴팍 찔러온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한영숙 시인

2004년 《문학·선》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푸른 눈』(한국문연, 2009)이 있음. 제2회 발견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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